줄넘기

냉이로그 2017. 6. 11. 11:41

 

 

 새벽 다섯 시 반 알람. 줄넘기를 다시 시작했다. 서울 살면서 시작해, 울진에서도, 영월에서도 딱 한 가지 해오던 운동.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중간에 멈추던 시기도 있었지만, 제주에 와서도 소길리 살 적에는 감자가 태어나기 직전까진 마당에서 했더랬다.

 

 

 아무래도 내게 필요한 건 근력이 아니라 유산소. 가장 오래해온 거기도 하고, 그래서 이젠 익숙한, 다시 시작하기에도 손이 쉽게 가는 게 줄넘기였고, 줄 하나만 있으면 한 평 공간만 있어도 되기에, 아마도 운동치고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어디에서건 할 수가 있는.

 기왕이면 감자, 품자랑, 달래랑 다같이 산책을 나가는 시간에 하면 어떨까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가 않아. 새벽에 아가들을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녁 시간이라면 아빠가 퇴근해 감자랑 저녁을 먹다보면 바로 씻고 재워야 할 시간. 감자품자랑 함께, 달래랑 함께라면 더 즐겁게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지만, 그또한 내 욕심밖에 더 되겠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고, 체육사에 나가 줄넘기를 하나 새로 사왔다. 이번 것은 얼마만에 줄이 다 닳아 끊어져 버리려나. 한참 뛰다가 줄 가운데가 다 닳아 툭, 끊겨 나갈 때의 쾌감은, 나름 썩 괜찮다 ㅎㅎ

 새벽 다섯 시 반이면, 날이 훤하기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그리 많질 않아. 어디로 나가볼까, 도서관 아래 운동장으로 나가서 할까, 아님 애월 초등학교 운동장엘 갈까, 하다가 아아, 거기면 좋겠다, 하고 가본 데가 고내리에 있는 조그만 등대 포구. 우리 집에선 젤로 가까운 바다라 감자품자랑 바닷바람을 쏘이러 가장 많이 다니곤 하는 곳.

 하하, 마침 거기에도 새벽 그 시간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더러 관광객들 가운데 아침 산보를 나와, 아침 바다를 보는 이들이 두엇 다녀가곤 했지만, 그 정도면 거의 없다싶은.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젠 바다를 바라다보며 줄넘기를 하는구나. 줄넘기 때문이라도 날마다 아침바다를 보겠어. 2년 가까이를 쉬다가 다시 뛰는 거라, 처음엔 얼마 못 뛰고 숨이 턱에 차올라. 첫날은 그냥 몸풀기로 하고 적당히 들어갈까, 하고 꾀가 나기도 했지만, 그러니 내가 문제지! 하는 마음이 들어 삼천 개를 꽉 채웠다. (다리가 띵띵!) 그러고는 이틀, 사흘 째가 되고 나니 금세 예전처럼 몸이 가벼워.

 

 

 조기, 조 아래 빨강 등대 옆에서 줄넘기를 타타타타. 오늘 아침 운동을 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언덕배기 벤치에 앉아 그 포구를 내뎌라보는데도, 그때까지도 아직 인적이 드물어. 그러니 타타타타, 아침 운동하기에는 딱인 곳 ㅎ 

 감자랑은, 품자랑은 언제쯤 줄넘기를 같이 할 수 있게 될까. 언제쯤이면 감자품자랑 달래랑 엇갈려 짝을 짓고 배드민턴 같은 걸 같이 할 수 있을까. 망연히 떠올리며 웃게 되는 행복한 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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