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느날

냉이로그 2017. 5. 31. 00:26

 

 

  오월 어느 금요일, 시와 이모야가 왔다. 세 해 전, 감자네가 소길리에 살 적에도 이런 오월이었다. 음반 속, 저 멀리 무대 위, 노래로만 듣던 시와 이모야가 감자네 집으로 놀러오다니. 그 사이에 자주 만나오면서 이젠 언니, 형부, 식구처럼 친하게, 가까운 친구가 되어 지내지만, 여전히 기분은 이상해. 그건 아마도 맨 처음 관계가 뮤지션과 팬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ㅎ  

 

 

 이모야는 품자를 처음 만나네. 돌도 훨씬 더 지나, 이렇게 살이 쪽 빠진(ㅋ) 다음에서야.

 

 

1. 승민선경의 출장요리

 

 푸하! 감자네 집은 왠지 출장요리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몬가가 있는 걸까. 언젠가는 감자의 돌상을 인천과 강화의 이모야들이 제주까지 내려와 한 상 떡 벌어지게 출장요리를 해주었는데, 이번엔 섬의 동쪽 승민과 선경이 출장을 나온 거.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거라면 오히려 내가 더 그리하고 싶건만, 거꾸로 민과 경이 식사초대를 했더랬다. 일 년이 넘게 이어져온 아버지의 투병, 그것도 그 날이 내일이라 해도 이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던, 그 상황으로 이어진 일 년. 무슨 일이 있거든 꼭 연락을 달라 했지만, 역시나 둘로부터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고, 안동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대구공항에서 시와에게 부고를 들었다. 시와 또한 다른 경로로 전해들었다며.

 초상을 치르고 내려온 친구들이었다. 아마 지칠대로 지쳤을. 그런데 오히려 지들이 식사 초대를 하겠다며 약속을 잡자는 거라. 육지까지 올라가 있었으면서, 빈소조차 들러올 수 없던 게 끝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었건만 ㅠㅠ 암튼 그 연락을 받은 게, 시와가 감자네 집에 오기 이틀 전. 그 얘길 했더니, 그럼 아싸리 시와 내려오는 날, 출장요리 준비를 해서 건너오겠다는 거. 난, 이래도 되나 싶어 어리둥절하였지만, 맛있는 거 해주겠다는 사람에게는 맛있게 먹어주는 게 최고의 예의이겠다 싶어, 좋아! 하고는 빈손으로 기다리고만 있어 ㅎㅎ

 

 

 이 부부출장요리단은 감자네 집에 들어오자마자 장봐온 것들을 척척 정리하더니, 미리 손질해온 재료들을 꺼내고, 팬과 냄비를 찾아 알아서 뚝딱뚝딱이었다. 뭐라도 거들까 싶어 곁에 얼쩡대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은 ㅎ   

 

 

 그리하여 그날 저녁은 아보카도라는 생전 듣기도 보기도 처음인 채소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어. 이야, 맛있다, 우아아! 맛있다. 게다가 더 좋았던 건 감자도, 마시께 마시께 하면서 잘도 받아 먹는다는 거.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시와가 먼저 노래를 들려주었네. 그동안엔 시와, 선경, 이내가 감자품자네 집에 올 때면, 깜짝 놀랄 하우스콘서트를 열어주곤 했는데, 이번엔 시와 선경 둘 다 기타를 들고 오지 않았어. 설령 기타를 지녔다 해도, 어떻게 함부로 노래를 청하겠나. 그런데, 시와가 먼저 얘길 꺼내.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하면서, 그 꿈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던가. 비행기에서도 마침 옆 자리에 아무도 앉질 않아서, 비행길 타고 내려오며 흥얼거리며 휴대폰으로 녹음했다며. 지난 밤 꿈으로, 제주로 내려오는 하늘 위에서 녹음한, 그 노랠 들어보겠냐면서.

 마침 시와 뒤로 곁에 서다 포스터가 있어서, 한 앵글에 담아 찍어보고 싶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노래> 시와가 좋아하는 문구가 그거이기도 하기에.

 

 

 시와의 새 노래를 듣고 난 다음엔 선경의 새 노래를 청해들어. 지난 4월에 이미, 감자네집 두 번째 콘서트를 해주었기에, 선경의 신곡들도 꽤 많이 들었건만 최근 블로그에 올라있는 노랫말, 그 노래는 아직 못듣고 있었기에, 그걸 불러달라 했더니, 유튜브 어디에선가 촬영된 거를 찾아. 아아, 지난 달 강정낭독회 모임에서 부르던 게 동영상으로 올라 있었구나. 하여, 선경은 가장 최근에 만들었다던, 아버지가 선물로 주고가신 노래라던 <조수>라는 노래를.   

 

 

 승민을 몰래 사진 찍는 일은 좀처럼 쉽지가 않아 ㅎ 기가막히게 돌아앉거나 뒤로 물러 않는다니까 ㅋ (그래서 이건 그날 저녁 사진이 아니라 사월 어느날, 민과경이 감자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던 날, 사진찍기에 성공한, 그것들 가운에 하나다.)

 

 

 

 

2. 오월 파란 날, 시와 이모랑.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얼마나 하얗게 빛나던지, 하늘빛은 얼마나 깨끗하게 파랗던지. 시와가 참여하는 그 레지던시 모임은 오후 2시부터 모이는 거라 했으니, 와아아아, 그때까지 우리 모할까? 하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고민 ^ ^ (물론 감자는 노란버쓰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고 난 뒤 ㅠㅠ)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느리게 씻었고, 양말을 신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왔다갔다 하면서, 아, 맞다. 시와에게 이거 들려주려 했는데. 전날 갑자기 피네 아저씨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마침 곁에 시와가 있어, 전시회 행사 얘기를 하다가, 시와가 손을 번쩍! 노래해도 될까요? 하고 자진해서 얘기하지 모야. 아저씨야 당근 환영! 이었고, 그렇게 하여, 빼떼기 전시 중 작가와 만남 시간에 시와의 공연이 그 자리에서 만들어져.

 그래서, 시와에게 들려준 건 언젠가 피네 아저씨가 <빼떼기>를 강독하면서 그걸 녹음해 텔레그램으로 보내주었던 거. 거기에 가서 노래할 텐데, 그 동화를 듣고 가면 좋지 않겠냐면서, 아저씨 목소리로 들으니 더 좋을 거라면서.

 

 

 그렇게 느릿느릿 집을 나서서 찾아간 곳은 구엄리에 있는 <소금>이라는 카페. 실은 그 전전날에도 이동철이랑 같이 라면을 먹으러 나갔다가 들른 카페인데, 한 번 가보고는, 마음에 들어 또다시 찾아가게 된 곳.  

 

 

 그걸 좋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암튼 거기엔 손님이 거의 없어 그런지, 홀 전체를 우리가 쓰다시피 하는 느낌. 그랬으니 품자도 그냥 맨바닥을 기어다니며 놀아도 좋아.

 

 

 다루끼와 오비끼, 나무각재들을 대충 쌓아다가 만든 의자들도, 품자가 짚고 일어나기에 딱 좋은 높이, 테이블 같은 게 따로 없으니 맘껏 기어다녀도 어디에 부딪칠 걱정이 없는 ㅎ 

 

 

 

 품자랑 아빠가 카페 안에서 노는 동안 엄마와 시와이모야는 길가 돌담에 기대어 바닷가를 내다보고 있어.

 

 

 둘이서 어떤 얘기를 나눴을지야, 품자도 아빠도 모르기만 할 거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엄마랑 이모야의 모습은 따뜻하고도 시원해보여. 

 

 

 하하하, 엄마한텐 누구라도 아빠 흉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텐데 ㅎ 아무리 내가 외롭다외롭다한들, 달래만 할까. 저 시원하게 트인 하늘,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그 앞에라도 자주 설 수 있어야 할 텐데.  

 

 

 품자도 엄마랑 이모야가 저기 창 너머, 돌담 앞에 서 있는 거를 보고는 아빨 돌아보며 웃어. 엄마랑 이모야랑 저기에 있다고, 가르쳐주기라도 하듯, 나는 엄마랑 이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롱! 하듯이 ㅎ

 

 

 그러고는 옴마옴마, 옴마아, 엄마아아~! 하고 창에 매달려 엄마를 부르는데, 품자야, 그러지마! 엄마랑 이모야랑 얘기 좀 하게, 아빠랑 여기에서 놀자야, 응!

 

 

 요 녀석, 가짜 울음은 알아준다니까. 지가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할 때, 땡깡쓰는 표정 오홍오홍오홍옹옹옹.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지는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고 짓는데, 달래랑 나는 그게 웃겨 죽겠다며 재미있어하기만 하는 ㅋ

 

 

 제 딴에 불쌍한 표정으로 떼를 쓰다가, 그래도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이런 얼굴로 바뀌어 ㅎㅎ 

 

 

 엄마랑 이모야는 어쩌면 할 얘기가 별로 없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저 하늘 아래라면, 그 하늘을 닮은 바다가 그 아래로 펼쳐지고 있다면야, 아무 얘기라도 흘러나왔을지 몰라. 생각지도 못한 어떤 얘기거나 아님, 나 자신도 몰랐던 내 얘기 같은.

 

 

 찻집 앞에 앉아 다 같이 사진 찍자! 하고 보니까, 그 언젠가 그 장면과 너무나도 똑같은 오마주가 일어나는 것 같아. 감자네 집이 소길리에 있었을 때, 시와 이모야랑 둘쨋날 오전, 집을 나서던 때. 

 

 

 품자야, 여기 좀 봐! 감자 형아랑도 엄마랑 이모야랑 이렇게 똑같이 앉아서 사진 많이 찍었거든!

 

 

 이제 좀 있으면 이모야랑은 헤어져야 해서, 너무 짧아 아쉬웁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모야. 다음 주말이 되면 피네 큰아빠 전시회 행사에 가서 이모야를 또 만날 거고, 이번엔 레지던시 예비모임이었으니, 본 행사가 있는 칠월 달엔 더 길게 와 있기로 했으니.

 

 시와 이모야는, 지난 밤

 

 

 시와 이모야는, 지난 밤 달래에게 그 노랠 불러주기도 했다. 3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난지 이튿날이 되던 날, 마침 그날이 달래의 생일, 그날 아침 생일 선물로 만들었다던 노래. 3년 전 불러보곤 다시 불러보지 않았다던 그 노래를, 잊지도 않고 기억해 다시 불러줘. 어쩐지 그 3년 전, 시와라는 음반 속 가수가 우리 집엘 오다니! 쿵쿵 가슴이 뛰던 때가 다시 떠올라.

 

 

 이모야랑 헤어지기 전, 점심밥은 모가 좋을까, 하다가 찾아간 데는 말랴의 친구의 친구네가 하는 귀덕간식 ㅎ 살짝 배가 덜 고프기도 했고, 왠지 아기자기한 그 공간을 시와가 좋아할 것도 같고, 그런 사소한 이유들도 있었지만, 내가 제일 끌렸던 건 생강청을 넣은 진저맥주 ㅎ

 

 

 품자도 답답한 데로 안 들어가니까 더 좋으니?

 

 

 하하하, 품자의 대답! 

 

 

 이번에도 역시 감자는 이모야가 가고 나서야 이모! 이모오오오! 시와이모오! 하고 이모를 찾아. 으응, 깜빡 할 뻔 했네. 어제 시와 이모야가 선물로 가져온 한라봉 케이크. 우와아아, 얼마나 맛있던지, 엄마아빠랑 이모삼촌들이 이만큼이나 먹었네. 어젯밤 감자품자가 모두 잠들고, 사흘 앞으로 다가온 엄마 생일을 축하하면서 촛불도 붙이고 그랬는데. 반쪽 남은 케잌을 놓고 감자랑 품자가 촛불을 꽂고 다시 한 번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시와 이모야가 다녀간 오월 어느 날, 햇살이 하얗고 하늘이 파랗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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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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