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들

감자로그 2017. 5. 10. 15:26

 

 휴일들이 지났다. 지난가을부터 겨울을, 그리고 올 봄까지 정신없이 바쁘던 현장 일도 사월 들면서부터는 좀 할랑해지고 있었어. 현장이 바빴더라면, 휴일이고 뭐고, 딴 나라 얘기로 들렸겠지만, 이번 휴일들은 빨간날들을 꼬박꼬박 찾아먹을 수 있었다.

 감자가 힘들었다. 감자가 힘드니 달래가 힘들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감기와 장염, 다시 감기로 몸이 두어 달 힘들기도 했지만, 몸보다 더 힘든 건 마음. 그 마음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면. 감자는 밤잠을 자려 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아침엔 늦어서야 눈을 뜨곤 했다. 잠이 모자란 상태라 그런가, 자꾸만 울음을 터뜨려. 달래는 걱정. 게다가 감자는 세수를 하자 할 때도 아빠랑! 기저귀를 갈자 할 때도 아빠랑! 신발을 신자 할 때도 아빠랑! 자러 가자 할 때도 아빠랑! 아빠랑, 아빠랑 을 입에 달았다. 그럴수록 달래는 우울이 더 깊어져.

 아빠는 다 들어주니까, 아빠도 냉정하게 안 된다고 할 때는 그렇게 하라고, 자꾸만 그러니까 잠버릇도, 밥먹는 버릇도, 그 어느 생활습관도 잘 들이지를 못하지 않느냐고. 정말 그런 걸까.

 사월 어느 날인가는, 어린이집에서 부모 상담이 있다 하여 달래가 다녀왔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랬다던가. "지슬이가 어린이집에서는 활짝 웃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세상에나. 그런 데도 그래야 하는 걸까. 그토록 싫은, 그렇게나 행복하지 못한, 그것을. 그러니 아침이면 노란버스를 타기가 싫어 이불에 엎드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러니 집에 오면 엄마아빠랑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 새벽이 되도록 잠이 와도 자려하질 않아. 그 심정 십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회사에 나가서는 웃을 일이 없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가기 싫어 울어버리고 싶은, 그래, 감자야, 아빠도 감자랑 똑같아.

 그러게. 나는 한 번도 감자에게 냉정한 얼굴을 지어본 적이 없다. 화를 내지 않으면서 혼을 낼 줄 알아야 한다던데, 그게 자신이 없는 걸까. 혼을 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낼 것만 같은. 아니,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그건 아니다. 실상 나는 혼내야 할 만한 일이 아직 없었을 뿐. 감자가 소리를 질러 울거나, 이랬다 저랬다 알 수 없는 짜증을 낼 때면, 혼을 내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러고 있는 저 자신은 얼마나 힘이 든 걸까. 무어가 마음에 차지 못했고, 무어가 불편해 이러는 걸까. 그저 그 마음을 살피고만 싶은. 그러다보면 혼을 내어야 한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아직 없었다. 그저 미안할 뿐.

 그 사이 달래는 많이도 지치고, 힘겨워했다. 게다가 갈수록 아빠만을 찾는, 감자에게 알게모르게 마음의 상처를, 불안을, 우울을.

 

 

  1. 더럭 놀이터

 

 더럭에 갔던 날이었네. 감자보다 석 달 뒤에 태어난 사촌 아기 식구들이 제주여행을 왔다가 감자네 집엘 들러. 그래서 함께 나선 곳이 집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분교. 사촌네 식구들은 약속이 있어 중문으로 넘어갔고, 품자는 젖먹을 시간이 지나 더 있을 수가 없었고, 바람이 세어서 감자도 그만 들어갔으면 좋을.

 하지만 모래에 환장하고, 돌에 환장하는 감자는 들어갈 생각을 하질 않아. 살살 달래어 안아 들려 하면 뒤집어지듯 버둥거렸고, 손을 잡아 이끌면 앙앙, 눈물콧물에 뒤로 넘어지듯 버텼다. 그래, 좀 더 놀다 가자. 품자랑 아빠랑 차에서 기다릴게, 엄마랑 놀다 들어와.

 조금 뒤, 달래가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아빠랑 놀겠대. 엄마랑은 안 한대.

 

 

 학교 놀이터로 들어갔더니 감자는 저렇게 혼자 모래에 그림을 그리며 놀아. 어쩌나 보려고 기척없이 한참을 지켜보는데도, 엄마아빠를 찾지도 않고 저렇게.

 

 

 

 감자야, 이거 타볼래. 이젠 감자가 혼자서 붙잡고 앉아 있을 수가 있나.

 

 

 

 

 

  

 2. 떼쟁이 감자

 

  떼쟁이가 되어가는 감자. 밥 먹을 때마다 돌아다니며 노는 걸 데려다 앉히느라, 아니 밥을 먹는 건지, 그냥 밥상을 펴놓고 노는 건지, 뒤죽박죽일 때가 많아지면서, 달래와 생각한 것이, 그럼 앞으로는 식탁에서 밥을 먹자며, 밥먹는 시간에는 밥먹는 거라는 걸 가르치자며, 그러자 했건만, 그것도 쉽지가 않아. 감자는 아기식탁에서 내려오겠다고, 짐승 울음을 내지르다 아빠 무릎에 앉겠다고, 그러고는 밥은 안먹고 손에 닿는 걸 끄집어내며 장난만을 쳐. 그러더니 식기소독기 안에 걸 끄집어내는 장난만.

 좋다, 감자야. 다 끄집어내려라. 그러고는 다 같이 마룻바닥으로 내려와. 엄마랑 같이 물받이 철망을 가지고 드르륵 드르륵 악기 연주를.

 

 

 하하하, 감자도 감자지만, 품자는 그것도 노래라고, 팔을 흔들며 춤을 추네 ㅎ

 

 

 

 

 

  3. 공원으로 소풍

 

 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들이를 나가곤 했다. 제주도에 살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우리에겐 큰 선물인데, 기회가 되면 바다건 오름이건, 그게 아니라 햇살 좋고 바람 좋고 꽃나무가 좋은 어디건, 마음껏 다녀보고 싶은. 하지만 감자품자가 감기로, 장염으로 고생을 하면서,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서 잠 시간이 뒤바뀌어 시도 때도 없이 잠투정이 일거나, 그도 아니면 무언가 마음이 부대끼면서, 감자는 차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면 "집에, 집에!" 하며 집으로 가자고만 할 때가 많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달라진 생활 때문일까. 그 전까지야 하루종일을 집에서, 그러니 한 번씩 바깥에 나가자, 바다에 가자, 소풍을 가자, 촛불하러 가자, 하면 눈이 반짝 좋아하던 감자가, 이젠 어디에만 가려하면 "집에, 집에!" 를 울어버려. 하긴, 감자는 그 전에 비하면 집에서 엄마아빠랑 노는 시간을 다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 아침엔 눈을 떠 눈꼽을 떼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어 노란 버스를 타기에도 바빠. 네 시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고작 몇 시간을 놀지 못하다 다시 잠이 들어야 해. 그러니 감자는 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우슬이랑 그렇게 있는 시간이 더 그리운 걸까. 차를 타고 나가는 건, 그 가기 싫은 어린이집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이젠 어디엘 차타고 가는 게 싫은 걸까.

 그러니 한 번 나갈 때면 한참을 꼬셔야 해. 감자야, 엄마랑 아빠랑 소풍 가자. 거기에 가면 솜사탕이 있을지도 몰라. 아기 김밥도 먹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와아아 신나겠다!

 글쎄, 굳이 소풍 따위 나가지 않아도 좋았을까. 이 긴긴 연휴에, 일부러들 제주로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이 오월에, 어쩌면 앞으로 몇 달은 이런 여유있는 시간이 다시 못올지 모르는데, 그래도 감자품자랑 어디에라도 나가고 싶은 건 그저 엄마아빠 자기만족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나간 한림 공원. 다행히 감자는 기분이 좋았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유모차 두 대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곳, 감자가 뛰어다녀도 차가 드나들지 않아 안 돼! 조심해! 하는 말로 묶어세우지 않아도 좋을 곳, 그게 우선이다 보니 막상 꼽아지는 건 많지가 않아.

 

 

 공원 안에는 커다란 새장이 있어. 감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건 꼬리를 활짝 펼치는 공작새들. 저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 어서 딴 데로 가자 하는데, 감자는 꼬리깃을 활짝 펴는 공작이 신기하기만 해.

 

 

 새장에서 멀리, 공원 뒷편으로 가니 돌로 깎아 놓은 말 조각상이 있어. 처음에는 겁을 내어 하더니, 그건 지슬이 말이라고, 이건 아빠 말, 저건 엄마 말 하며 다그닥다그닥 다그닥다그닥.

 

 

 

 감자는 아기말을, 품자는 유모차를, 다그닥다그닥!

 

 

 감자가 엄마한테도 엄마 말을 타라네 ㅎ

 

 

 품자가 혓바닥을 내밀었다고, 감자도 메롱!

 

 

 품자는, 입에 물고 있던 물병 뚜껑 하나만 가지고 장난을 놀아주어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

 

 

 

 아, 이 하얀색 띠를 두른 잎에 남빛 꽃을 피우는 게 이름이 뭐였더라. 감자를 안고서 서둘러 이리로 뛰어갔던 건, 다름이 아니라 당황스런 순간이 생길 뻔 했기 때문. 감자랑 품자랑 잠시 머물러 도시락을 먹던, 그 말 조각상으로는 다른 여행객들도 사진 찍으러 들러가곤 해. 특히 아기가 있는 식구들이면, 아기를 말에 태워주면서 여행사진을 찍곤 하는데, 감자가 "지슬이 말, 지슬이 말!" 이라면서 으아앙 울음이 터져버리기 직전. 휴우, 다행히 감자가 좋아할만한 풀나무밭이 있어 서로가 무안하지 않게 그리로 자리를 피할 수 있었지 모야.

 

 

 고맙게도 그 옆에는 돌탑이 있기도 했네. 돌이라면 환장을 하고 좋아하는, 감자는.

 

 

 

 

   4. 초가집 마당

 

 그 공원 안에는 한 켠으로 초가 마을을 재현해 놓은 데가 있어. (아빠가 보기에는 말이야 ㅋㅋ 거기에 있는 초가집들이 다 엉터리라며 어쩌구저쩌구 설명을 했더니 엄마가 아빠를 보며 오오오오오~! 전문가 맞네 하며 웃었지만 ㅎ) 감자랑 품자를 안고, 요즘 아빠가 일하던 초가집 현장에도 데리고 가고, 둥근 박을 뒤집어놓은 듯한 초가지붕 위에도 데리고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공사가 다 끝나도록 아직 그러지를 못했지 모야. 그게 좀 아쉬웠지만, 마침 공원 안에 초가집이랍시고 만들어놓은 데가 있으니, 이마저도 반갑더라.  

 

 

 품자는 아빠 품에 매달려 잠이 들 기세, 감자도 그만 졸릴 때가 되었는데, 아직까진 기분이 좋아.

 

 

 

 

 

 

  5. 난지도 삼촌

 

 연휴가 시작할 즈음, 난지도가 섬에 내려왔다. 이 값비싼 영혼은 이 먼 데까지 와서도 쉽지가 않아 ㅎ 새벽 첫 비행기로 내려와 성판악으로 한라산 꼭대기를 올라 관음사 길로 내려오고는, 거기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있다는 거. 일행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 날 일정 때문에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긴긴밤을 산 아래 텐트에서 혼자 어쩌겠다는 건지, 결국은 관음사 캠핑장까지 쫓아가 모시고 내려와. (마음은 뒷덜미를 낚아채는 거였지만 ㅠㅠ) 암튼 난지도는 그날을 시작으로 여덟 날을 제주에.

 저녁 때 아빠가 어딘가로 나가니, 감자는 내복을 입은 채로 "아빠랑, 아빠랑!" 하며 찡찡을. 요즈음엔 차를 타면 일이십 분도 힘들어하건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 왕복으론 두 시간 가까이를 아빠랑 둘이 다녀올 수 있겠는지. 감자는 쫓아가겠다 했고, 그래, 감자야, 아빠랑 산에 가자.

 차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감자랑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자야, 아빠 친구가 제주도엘 왔대. 아빠랑 젤로 친한 삼촌인데, 엄마랑 아빠가 제주도에 내려와 살게 되고, 감자랑 품자랑 낳아 살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삼촌이야. 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삼촌이니까, 감자도 좋아할 수 있는 삼촌이야……. 감자 요즘에 많이 힘들었니, 어린이집에 다니느라 엄마아빠랑 집에서 같이 노는 시간이 없어 많이 서운하겠다, 아빠도 회사에 안 가고 감자랑 품자랑 집에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렇게 하고싶은대로만 살 수가 없네. 감자도 조금씩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아지고 그러면, 엄마아빠보다 친구랑 노는 것만 더 좋아할지 몰라. 지금 너무 갑자기 낯선 곳에 가 있어야 해서 많이 힘들지, 엄마도 아빠도 감자가 어린이집 가있으면 얼마나 보고싶은지 몰라……. 이야아아, 감자야, 아까 집에서 나올 때 마당에서 본 달님이 여기 한라산까지 따라오고 있네. 달님이 감자 어디가는지 궁금한가보다. 길이 너무 깜깜하지 말라고, 깜깜한 데로 가다가 길 잃지 말라고 달님이 도와주고 있는가봐…… 물론 그 두 시간 가까이를 떠든 건 아빠 혼자였겠지만, 그래도 감자는 응, 응 하며 대답을 건네주었다. 알아듣고 있었을 거야, 다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무언가 아빠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해주고 있다는 거 만큼은.

 

 

이건 난지도 삼촌이 온지 사흘째 되는 밤이었나 보다. 첫날부터 감자가 이렇게 꼭 붙어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감자는 이튿날부턴 삼촌이 자는 방을 가리키며 "난지도 삼촌"이라 말할 줄을 알게 되었고, 사흘이 되던 날, 삼촌과 함께 가파도 보리밭엘 다녀오고는 제법 곁을 내주기도 해.

 

 

 

 역시나 품자는 마냥 행복해. 처음 만나는 삼촌이지만, 망가져야 할 때는 기꺼이 망가져주고, 자상한 손길이 필요할 때면 더없이 세심하고 자상한 손길을 건네는 난지도에게 마음을 확 열어버리고 말아.

 

 

 

 

 

 6. 가파도 보리밭

 

 

 보리가 파랗게 팰 때, 가파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오고 있었다. 언젠가 송악산에 올랐을 때, 멀리로 내다보이는 작은 섬, 그 섬 전체가 파랗게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던.

 제주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회사 후배가, 엊그제 가파도엘 들어갔다 왔다며, 집에서 아침에 출발, 모슬포항에서 한 시간 줄을 서서, 열두 시 배를 타고 들어갔다기에, 우리도 가 볼 수가 있을까, 감자품자랑 아침 일찍 움직여, 그 긴 줄을 기다려 배를 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무리겠다, 하다가,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마침 난지도 삼촌도 집에 와 있으니, 함께 가보자! 하면서.

 사실 난지도는 한라산에서 내려온 이튿날, 몸살로 내내 앓았다. (으이그, 산 밑에서 텐트치고 궁상떨으라고 그냥 뒀더라면 응급실로 실려갔겠네 ㅠㅠ)  감기몸살 약에, 죽을 사다 대고,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고, 그렇게 하루를 꼬박 누워만 있더니, 그 담날에야 겨우 몸을 추슬러. 실은 가파도 들어가기로 한 날은 난지도가 앓아눕던 그 날인데, 삼촌이 그리 누워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미뤄 출발한 길. 모슬포항에 열한 시쯤 도착을 했을까, 우리가 살 수 있던 배편은 오후 두 시 것.

 물론 감자는 때때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배표를 사느라 기다리는 동안 모슬포 항 둘레를 돌아다니며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았고, 바람 센 그 길을 실컷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뜨거운 볕에 지치면서 울음을 터뜨리며 떼를 쓰기 시작해. 달래는 함께 지쳤고, 어쩔 줄을 몰라했고, 당황스러워 해.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에 타면서야 감자는 잠이 들어. 졸렸구나, 지치고 졸려 더 힘들었구나.

 

 

 품자는 난지도 삼촌 품으로 옮겨져서도 세상 모른 채 잠이 들어있어.

 

 

 오월 사일, 이미 청보리 물결은 노란 빛으로 많이도 바래져 있었다. 푸릇한 그것, 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노란 물이 들어 익어있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아.

 

 

 감자에게 이 물결을 보여주고 싶었건만, 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도록 감자는 깰 줄을 몰랐고,

 

 

 품자는 아빠 품에 안긴 채로 그저 좋았다.

 

 

 이렇게,

 

 

 또 이렇게.

 

 

 난지도 삼촌이 함께 해서 더 좋았던.

 

 

 

 

 

  7. 보리밭 감자

 

 가파초등학교였던가, 섬에 있는 학교엘 들어갈 즈음, 감자가 깨어났다. 순간 다행스런 마음. 감자에게도 그 보리물결을 아주 못보여주지는 않겠구나 싶은. 그러나 한 편으로는 걱정스런 마음. 이제 또 어쩌나. 두 시 배로 들어왔고, 네 시 배로 나가기로 했으니, 벌써 한 시간을 넘게 지나, 이제는 또다시 나가는 배를 타러 가야 할 텐데. 감자는 이제야 눈을 떠, 더 놀고 싶어할 텐데, 또다시 억지로 감자를 데리고 배를 타러 가야 한다는 게.

 

 

 모래만 보면, 돌만 보면 환장을 하는 감자는, 섬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모래에 한참을 꽂혀.

 

 

 감자 형아가 그러거나말거나, 누구라도 눈만 맞춰주면 마냥 좋은 품자는.

 

 

 더 놀고 싶어하는 감자를 어렵게 꼬셔내어 (이미 배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어 ㅠㅠ) 들어온 길을 돌아나가는 길.

 

 

 

 

 

 

 

8. 먼 데 말고 여기

 

 가파도 섬에 다녀온 그 다음 날이었나. 징검다리 빨간 날은 아니었으니,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날. 하지만 감자는 엄마도, 아빠도, 난지도 삼촌도, 품자도 모두 있는 집을 두고 혼자서만 어린이집 버스를 타기가 싫어. 그날은 어린이날 잔치를 한다며 어린이집에서 나름 행사가 준비되어 있기도 한다던데. 감자가 신발 신기를 기다려주면서, 시간이 자꾸만 늦어져, 그러면 감자는 집에 있어라, 하고선 출근을 하려 하니, 이젠 또 아빠를 따라나서겠다고 울어. 어쩌지, 감자야.

 그날 감자는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결국엔 어린이집 가는 길에서 차를 돌려 집에 있기로 했다. 물론 차에서 내려 아빠랑 삼촌과 인사를 할 땐 눈콧물 범벅이 다시 터져야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냥 그럴 수는 없는 일. 오후엔 달래의 친구네 식구들이 제주여행을 내려온 길에 감자네를 들렀고, 엄마 친구네 식구들이랑 밥 한 끼를 먹으러 나가.

그러고나서 잠깐 내려선 바다가 바로 여기.

 

 

 숱하게도 많이 나와 놀던 구엄리 돌염전 앞. 감자는 데크로 만든 이 길이 반가운지, 엄마 친구네랑 헤어지고 나서도 이 길을 신이 나서 뛰어다녀. 바람이 세게 불어, 열이 오르고 있는 품자가 걱정이었지만,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또다시 "이제 가야 해!" 라는 말을 하며 억지로 차에 타자 할 수가 없었다. 그래라, 놀아라. 집 가까운 여기에서라도, 놀다 지쳐 그만 들어가고 싶을 때까지 실컷 놀아라.

 

 

 

 무엇보다 반가운 건, 감자에게 예전 그 얼굴, 그 표정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품자를 안고 있는 동안, 엄마랑 둘이서, 근래 들어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한 얼굴로 함께 놀아. 아빠 품에 매달려 칭얼대는 품자가 걱정이었지만, 감자와 엄마가 행복해하는, 얼마만의 시간인데,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 최대한 품자에게 바람이 들이치지 않게 하느라, 바람을 등진 채 토닥이며, 감자와 엄마의 그 시간을 기다려.

 

 

 감자가 행복해하는 건, 어디 멀리, 풍경이 좋다는 섬의 남쪽이거나 동쪽, 빼어난 구경거리 따위가 아닐 거라는 걸. 비로소 잘 알 것 같아. 감자는 그냥, 집에서 가까운 동네 바닷가이기만 해도, 아니 바닷가가 아니라 집 앞 마당이기만 해도, 마음껏 놀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 그런 것을, 그 긴 시간 차를 태워 지치게 하고, 밥 때에 쫓기면서 식당을 찾아들어가서는 만지면 안 되는 거 투성이를 견디라고만 해. 그러고는 차 시간이 어떻다며, 배 시간이 어떻다며, 이젠 누굴 만나러 가기로 했다며, 이젠 집으로 가야 한다며, 무엇 하나 감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 집에!" 눈물콧물 범벅으로 감자는 소리치곤 했다.

 

 

 그래,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어. 어디 멀리, 가보면 좋다는 곳, 좋다는 풍경, 그런 데를 보여주려 하지 말고, 집 앞에라도 자주 나가 놀자. 이제 그만! 가야할 시간! 이런 소리 하지 않아도 좋을, 집에서 가까운 곳들에서,

 

 

 그냥 이렇게.

 

 

 

 

  9. 감자품자의 어린이날

 

 어린이날, 우린 그냥 집에서 놀았네. 멀리서 할머니가 아가들 장난감이라도 사주라 보내주신 돈으로, 농협하나로마트 한 구석에 매달려 있는 봉제 인형 하나씩을 쥐어주고, 외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주라 보내주신 돈으로 동네 돈까스집을 다녀왔던가. 아, 그러고나선 네 식구 다같이 투표를 하러 읍사무소엘 들르기도 했구나. 그렇게 살랑살랑, 집 가까이를 벗어나지 않은 채, 돌아오는 길에는 오천원짜리 조그만 케잌 하나를 사다놓곤 촛불을 꽂아.

 

 

 피곤하지 않은 감자는, 벌써 닷새 넘게 어린이집엘 가지 않고 엄마아빠랑 지내고 있는 감자는, 예의 그 얼굴이 돌아왔다. 볼품없는 케잌에 초 하나씩을 꽂고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감자와 품자.  

 

 

 

 

 

 

  10. 마당에 나가 놀자

 

 차를 타고 어디 멀리 나가면 "집에, 집에!"를 외치지만, 집 안에서만 놀다 보면 "밖에, 밖에!" 나가자고 떼를 쓰기도 해. 그럴래, 감자야? 마당에 나가 놀자. 어디 멀리 나가려면, 집 안에서 입던 내복 같은 옷 말고, 위아래 옷도 갈아입어야지, 세수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야지, 번잡하게 준비가 많아, 그것만으로도 지쳐버릴 때가 많지만, 그냥 마당에 나가 노는 데에는 그런 번잡함 같은 건 하나 필요가 없어.  

 

 

 그냥 풀밭에 털푸덕. 그래라, 감자야. 하고싶은대로 놀아. 옷이야 버리면 들어가 갈아입으면 되지, 흙 좀 묻히고 그러면 어때, 아빠랑 같이 목욕하고 물놀이하면 되지.

 

 

 하지 말랄 게 없었네. 만지면 안 된단 말도, 거긴 가면 안 된단 말도, 이제 그만 가야 한단 말도, 감자 뜻에 반하는 그 어떤 말도 할 것이 없어. 엊그제 구엄 바닷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당에서 한참을 놀던 감자는, 저만의 무아지경 속에서 마른 풀을 제 몸에 뿌리며 한참을 놀더니, 집에 가자며 아빠 손을 잡아 끌었다.

 감자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던 길, 얼마나 평화롭던지.

 

 

 

 

 11. 휴일 마지막 날.

 

 대통령을 뽑던 그날. 요 며칠 사이에 품자도 혼자서 소파를 기어오르는 데 성공. 잠깐 바깥에 나갔던 아빠가 거실 창을 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네. 어머나, 감자랑 품자 둘이서 창문에 매다려 있어.

 

 

 시장 풍경이 나오는 그림책을 보던 감자가, 그날따라 자꾸만 김밥 그림을 가리키며 김밥이 먹고 싶다는 거라. 그래, 감자야, 김밥 먹으러 가자! 하고는 찾아나선 데는 집에서 멀지 않은 귀덕리, 귀덕간식. 말랴삼촌 친구가 하는 가게라 얘기를 듣고 언젠가 한 번 찾아가 보았던 곳.

 

 

 하하하, 그리하여 긴긴 연휴의 끝, 선거 개표를 앞두고 있던, 그날 저녁엔 꼬마김밥에 떡볶기를 먹었다 ㅎ 무엇보다 기쁜 건 떼쟁이 감자가 다시 예전 그 감자로 돌아왔다는 거. 그 며칠 뒤로 감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도대체 감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달래는 너무 기뻐 울기까지 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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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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