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형아가 어린이집엘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온통 마음이 거기에 가 있고, 아빠는 낮밤없이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느라 밥하는 거며 장보는 거며, 살림이 엉망. 그런 사이 품자는 우리에게 오고, 일 년 한 바퀴가 다 되어가고 있었어.
내일이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을 거라는데, 그날은 품자가 지구별을 타고 꼭 한 바퀴가 되는 날. 그래서 오늘은 서울에서, 울진에서 장모님과 장인어른, 처형들과 윗동서, 그리고 얼마 전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 처남까지 일곱 분이 제주엘 내려왔다. 목금토일, 품자의 첫 생일을 함께 보내러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이모와 이모부들, 그리고 외삼촌까지.
감자 형아가 한 바퀴를 꽉 채우고 첫 생일을 맞던 때에는 서울엘 올라가서 회기동 할머니랑 큰아빠네 식구들이 모여 돌상을 차리고, 잠실에 사는 이모네 집으로 넘어가 울진에서 올라온 외갓집 식구들이 다 모여 또 한 번 돌상을, 그 다음 날에는 광명시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한 번 더 돌상을 차렸더랬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많으니, 마치 행사 뛰는 연예인처럼 바쁘게도 돌상을 받으러 다녔지 모야. 게다가 제주까지 내려와 기차길 식구들이 마련해준 그것까지 더하면 돌잡이만 네 번을 한 거였으니 ㅎ
1. 회기동 할머니랑 함께
감자는 할머니 방에 있는 문갑을 하나하나 열어 다 뒤지더니, 할머니 아야해서 바르는 약이라 하니까, 할머니 어깨에 약 발라주는 놀이 ㅎ
감자 형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날 때마다 돌상을 보고 그랬지만, 이번엔 그 돌상을 줄이기로 해. 그대신 어느 쪽이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운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럼 회기동에선 돌상 차리는 거 대신, 다같이 돌사진, 가족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이라는 델 가기로!
요즘은 아기 사진 전문이라 하여 백일이니 돌이니, 그리고 그 사이에도 틈틈히 찍어서 성장 앨범이라는 걸 만들기도 한다지만, 핸드폰만으로도 사진이 차고 넘치는 데 그게 다 무어냐, 게다가 알록달록 꾸며놓은 옷차림으로 찍곤 하는 그거가, 영 우리 취향은 아니라 여태껏 사진관 근처엔 얼씬도 하질 않아. 그러던 참에, 그래도 이번에 사진관을 생각한 건, 돌상을 겹으로 차리는 그 노력이면 사진관이란 델 한 번 가도 좋겠다 싶었던 거. 게다가 이젠 형네든 우리든 더이상 가족이 늘게 될 것 같진 않으니, 이참에 다같이 모여 가족사진이란 것도 찍으면 좋겠다 싶은. 그렇게 하여 우리가 찾은 사진관은, 그런 아기 전문 사진관이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찍는 돌사진에 가족사진을 찍는 그런 곳이었다 ㅎ
사진관 가는 길.
진우 형아 손을 잡고서 ^ ^
큰아빠 가슴에 안겨 ^ ^
이렇게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이란 걸 찍을 일이 또 있을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비싼 돈을 주고 사진관을 예약했지만, 막상 입을 옷을 찾으려니 맨날 입던 평상복밖에 없어. 그것도 몇 년 째 입어 빛이 바래고 구김이 많은 ㅎ 사진을 찍고 보름 쯤 지나 사진이 다 되었다고 연락이 왔는데, 옛날식으로 찍은 이 촌스러운 가족사진이, 나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웃지 않는 감자도, 꼭 옛날 사진 속에 나오는 아기 같으네 ^ ^)
사진사 아저씨는 예순은 훨씬 넘어 칠순에 가까운 분이었다. 염색을 해서 흑발의 머리이긴 했지만, 사진관을 한지가 사십 년이 되었다 했으니, 얼추 짐작을 해도 그 정도 나이는 될 것 같은. 오랜 연륜의 사진사 아저씨가 리드를 잘 해주어 그런가, 한 시간 넘게 사진을 찍는 동안, 내내 웃음이 터졌다. 뭐랄까, 요즘의 세련된 유머나 그런 건 아닌데도, 무언가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편안하고 익숙한 아저씨의 노력에 내내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느 순간, 쑥스러움 많은 우리 가족은, 사진관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브이를 했다가,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했다가, 꽃받침을 하기도 하며, 그 어색한 연출들을 즐거워하며 잘도 따라했으니 ㅎ
사진사 아저씨의 연출 가운데 하나가 이거 ㅎㅎ 할머니가 셀카 찍는 시늉을 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그 화면을 함께 들여보는 ㅋ
전체 가족 사진을 찍고 나서는, 사진관 아저씨의 써비스. 형네 가족 따로, 동생네 가족 따로, 따로따로 가족사진도 ^ ^ (하하, 그나마 달래와 내가 옷을 맞춰 입은 건 재작년에 해원이가 자수를 넣어서 선물해주었던 티셔츠. 요즘 한참 말을 배우는 감자는, 저 옷에 수놓여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엄마달래! 아빠냉이! 지슬감자! 를 말하곤 해. 그러고는 그림엔 없지만 우슬품자! 까지 ㅎㅎ)
그렇게 각 가족사진까지 따로따로 찍고 나서는, 이번엔 감자랑 품자의 투샷! 이 역시나 우리가 언제 또 사진관엘 와보랴, 하면서 감자품자 둘을 놓고 사진을 부탁하였는데, 아무래도 감자품자는 한참 신나게 놀 때 집에서 엄마아빠가 찍었던 것만 못한 것 같아. 어른들이야 사진기 앞에서 나름 표정 연출을 하기도 한다지만, 감자는 사진관에 가 있는 내내 얼어 있었으니 말이지 ㅠ
그리곤 이날의 주인공 품자! 이땐 감자 형아랑 함께 찍으려 하던 때였는데, 감자 형아가 자꾸만 돌아다니는 통에 찍게 된 품자의 독사진 ㅎ
하하, 맨 마지막으론 품자의 돌 사진. 그 옛날 낡은 앨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아주 고전적인.
사진관에서는 나름 작전을 짜고서, 가족사진들부터 찍어야, 아기가 사진관에서 겁먹지 않고, 나름 공간에 익숙해졌을 때, 돌사진을 찍는 게 좋다면서 맨 마지막 순서로 미뤄두었는데, 오히려 품자는 그 전에 웃을 거 다 웃고 난 터라, 정작 한복을 갖춰입고 돌사진을 찍을 때는 힘이 다 빠진 것 같아 ㅎ
그래도 경력 사십 년의 사진사 아저씨가, 아기 돌사진을 이렇게 편하게 찍기는 처음이라, 하실 정도로 품자는 저 의자 위에 덩그러니 앉아서도 울거나 보채지를 않았다. 이게 모하는 건가 하는 얼굴로 어리둥절이긴 했지만, 하하하, 의젓하게 잘 앉아 있었으니.
* * *
아, 그리고 이렇게 사진관에 나선 길에, 한 컷을 더 하였던 건.그날이 최대한 더디 오기를 바라지만, 아주 피하지는 못할, 훗날 엄마에게도 꽃장식을 두를 영정사진이 필요하겠지. 사진사 아저씨께 부탁을 드렸다. 너무 엄숙하고 굳어있는 표정으로는 찍지 말아주세요.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회기동에선 할머니와 함께 돌사진, 가족사진을 찍으며 품자의 첫돌을 함께 하였다.
2. 광명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회기동 할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사진관에서 돌사진 가족사진을 찍고 난 다음에는 또다른 할머니할아버지를 만나러. 광명시 할머니는 아가를 얼마나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지, 감자도 품자도 할머니 앞에서는 웃음이 그치지를 않아.
할머니가 바나나를 긁어 입에 넣어주니 품자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네.
그러곤 할머니와 마주앉아 짝짜꿍에 지암지암, 곤지곤, 할 줄 아는 건 다 보여주며 얼마나 신이 나 하는지.
할머니에게 꽂힌 품자는, 할머니가 부엌 쪽에 있거나 다른 방에 들어갔다가도, 어디선가 할머니 목소리만 들려오면 그리로 고개를 돌려. 그리곤 할머니하고 눈이 마주치면 모가 그리 좋은지 한껏 행복한 얼굴이.
할아버지 앞에서는 얼굴이 얼음! ㅎㅎ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건, 감자와 할아버지가 얼마나 재미있게 놀던지.
풍선을 가지고 공놀이를 하는데, 아하하하 와하하하, 감자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어대.
할아버지가 조금만 장난스런 제스쳐를 보여도 감자는 아하하하하 와하하하하!
왠지 할아버지한테는 곁을 별로 주지 않을 줄 알았다. 무서워하거나, 아님 낯가림을 할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왠걸! 감자를 그렇게나 오래도록 웃게 해준 사람이 또 있던가 싶을 정도로, 할아버지와 감자가 재미나게 놀아.
할아버지가 숨이 차서, 더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그래서 그 저녁에도 아빠가 풍선을 몰래 감춘 뒤에야 그 풍선 놀이를 끝낼 수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감자는 풍선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쫓아나가 ㅎㅎ
어이구, 큰일났다. 감자 때매 할아버지 힘 다 빠지겠네 ㅎㅎ 하고 말을 하면서도, 할아버지랑 그렇게나 잘 노는 감자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품자는 할머니에게 푹 빠져 할머니만을 찾더니, 감자는 할아버지가 잠깐이라도 안 보이면 "할배는? 할배는?" 하면서 할아버지를 찾아.
할아버지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난 다음 날, 할아버지할머니가 차려주신 돌상.
감자 형아가 돌을 맞아 서울에 올라갔을 때도, 바로 그 자리에서 돌상을 보았더랜 ㅎㅎ
품자가 벌써 지구별에서 한 바퀴. 감자 형아 때하고는 또다르게, 바로 위에 아직 아기인 아기형아를 둔 둘째 아가의 한 해 살이. 온전히 품자에게만 마음과 정성을 다 할 수가 없기에, 감자에게는 그맘 때 해주던 것들을, 못해준 게 너무나 많아.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던. 그러나 품자는 고마울 정도로 혼자 잘 놀았고, 잘 기다려주었고, 감자 형아보다도 더 잘 웃고 있어. 아는 걸까, 제 위에 아직 아가인 형아가 있다는 걸, 그렇게 혼자 웃고, 놀고, 기다리면서 행복해지는 법을.
품자가 우리 곁에 온지 일 년이 되었다. 감자 형아 때는 아빠도 회사일을 쉬면서, 난장이공 카페를 하면서 내내 함께였지만, 다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느 때보다 힘겨웁게 지나던 그 일 년. 그나마 아빠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다다다다다 달려와 "아빠다!" 외쳐주는 감자 형아와, 아빠에게 안기겠다고 팔을 뻗으며 반짝이는 품자의 웃는 눈망울 때문.
품자의 돌잡이. 명주실도 없고, 쌀도 없고. 식당에서 내어주는 돌잡이상이란, 봉제인형으로 만들져있는 돌잡이 세트. 말하자면 청진기 모양 인형에 엽전 모양 인형, 판사봉 모양, 마이크 모양, 마우스 모양 따위의 인형들이 놓여져 있는. 말하자면 인기있는 직업의 소품들이 담겨져 있는데, 아, 저것들 중에 아빠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런 자리에서 하는 거니 뭐 어쩔 수 있나, 그저 재미삼아 해보자 하고 펼쳐놓았는데, 품자가 손에 쥔 거는 동그랗게 생긴 인형이었어.
다른 거야 대번에 청진기니 마이크니, 알아볼 수가 있었지만 그게 몬가 하고 들어보니, 헐, 뒤집어져있던 그 인형의 반대편에는 여의도 뺏지 모양이 그려져 있는 거라. (안 된다, 품자야. 그런 건 멀리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