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슬픔

감자로그 2017. 2. 15. 10:09

 

 

 퇴근하고 돌아오니 감자 눈이 뻘겋다. 평소, 문을 딸깍 열고 들어서면 다다다다 달려나와 아빠다! 두 팔을 벌리던 때랑은 달라. 이불 위에 가만히 앉아 빨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고개를 빼면서, 아빠 뒤에 또 누가 들어오는지를 살펴. 아, 그건 형이 뒤따라 들어오나, 를 보는 거였어. 

 감자가 서럽게 울었다 했다. 품자를 안아 젖을 먹이는 동안, 감자가 엄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더니, 형이랑 함께 놀던 동영상을 보았더라나봐. 그러더니, 처음엔 알 수 없는 소리로, 형, 형, 형, 하면서 울었다지. 달래는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흥, 흥, 흥 하고 우는 소리만을 내는 줄 알고, 지슬아, 왜 그래애? 엄마 금방 우슬이 맘마 주고 그리로 갈게! 했다는데, 감자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더니 허엉, 허엉, 혀어어엉, 하고 형을 부르면서 으아아아앙, 그치지 않는 울음을. 

 그제서야 달래가 감자가 보고 있던 동영상 화면을 보니, 거기엔 근이 형아랑 즐겁게 놀던 장면이 흐르고 있어. 얼마나 서럽게 감자가 울던지, 달래도 그만 감자를 따라 같이 울음이 터져.

 그날은 내가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근이를 태우고 나가 공항에 데려다주던 날. 근이 형아가 군대를 마치고 감자네 집에 와서 아흐레를 함께 하다 복학을 준비하러 육지로 다시 올라가던.

 

1.

 

 둘쨋날 오전이었나 보다. 형아가 있으니, 엄마랑 셋이만 있을 때는 엄마가 품자를 안고 있느라 마당에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형아가 있으니 이렇게 마당에 나가는 것도 자유로워.

 

 

 

2.

 

 이틀, 사흘이 되면서 이젠 감자품자는 자연스레 형아 곁으로만 모이게 되어. 형아가 오전 늦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때부턴 감자도 품자도 형아가 가는 데만 졸졸. 마치 어미닭 뒤를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형아가 가는 쪽으로 쫓아 달려가고, 기어가고 하면서 놀아달라고, 놀아달라고.

 

 

 

3.

 

 그러다 돌아온 일요일, 근이 형아가 와 있는 참에 엄마에게도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감자랑 품자, 형아랑 아빠, 넷이서 집에 있고, 엄마 혼자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라고. 그러고보니 달래 혼자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지. 적어도 품자를 낳고 난 뒤에는 처음이었으니. 그나마 감자 때는 모유수유가 되질 않아, 분유를 타먹였으니, 아빠 혼자라도 맘마를 줄 수 있었지만, 품자는 여태 엄마 젖만을 먹으니, 그 자유시간이란 것도 두어 시간밖에 되질 않았지만.

 

 

 

4.

 

 

 

5.

 

 자유시간을 얻은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간, 감자는 아빠가 들고다니던 가방을 보더니 '도리'를 틀어달라고. 감자는 벌써 <<도리를 찾아서>> 애니메이션을 수십 번도 더 보았지만, 봐도봐도 열광하고 있는 그것. 노트북을 형아 방에 꺼내놓고, 영화를 틀어주면서, 그럼 아빤 테레비로 뉴스 좀 봐야겠다 하는데, 형아와 감자는 시종 흐트러짐이 없이 빠져들어 버렸네 ㅎ  

 

 

 

6.

 

 형아가 제주에 와 지내는 동안, 날씨가 내내 좋질 않더니, 일요일 오후엔 그나마 포근했다. 어디 가까운 바닷가라도 나가자, 하고 갔던 구엄리 바다.

 

 

 

7.

 

 품자는 이제 겨우 소파를 짚고 서기를 시작했어. 돌이 이제 얼마 남질 않았는데, 감자 형아도 다른 아가들보다 한참을 늦는다 했는데, 품자는 더 늦질 모야. 몸무게만으로는 다른 아가들 두 배에 가까운데, 앉는 거 기는 거 서는 거 걷는 거 같은 거 다른 아가들 반도 못 따라가 ㅎㅎ 감자 형아만 해도 돌 전에 벌써 짚고 서서, 거의 걷기 직전까진 했었다만, 품자는 이제야 겨우. 형아가 있는 동안엔, 형아가 있는 데를 쫓아가 몸을 일으켜 세웠네.

 

 

 

8.

 

 형아가 올라가기 전날, 그날은 평일이었지만, 마침 아빠가 오후 늦게 세계유산센터 공사감독관에게 제출할 서류가 있던 날. 감자와 품자, 형아랑 엄마까지 다함께 차를 타고 동쪽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서류 제출하고 나오면 퇴근시간 무렵이 될 테니, 거기까지 가는 길에 다 같이 오름에 올라가보자! 하고선. 

 

 

 

 올라가기 직전, 근이는 지슬이 우슬이 덕에 참 많이 웃었다고 했다. 오기를 잘했어, 형. 정말 많이 웃었어. 그리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그냥 혼자였으면 맨날 멍때리고 그랬을 텐데, 심각하게 생각도 많이 하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는 얘기는 알겠는데, 울기도 많이 울었다니. 울었구나. 자러 들어간 방에서, 울기도 했구나. 그 말에 짐짓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울었다는 거에 그리 걱정이지는 않았다. 그럼, 스물넷, 그 나이면 얼마나 많이 울 때인가. 나는 그 나이에 얼마나 또 울었던가. 걱정이라면 울 줄을 모르는 게 걱정이겠지. 더 많이 울어야 하고, 더 많이 슬프기도 해야할. 그렇게 하면서 조금 더 내 안으로, 세상으로 한 발짝씩 더.

 근이를 공항에 바라다 주고, 일을 하다 돌아온 퇴근 길. 형아를 찾으며 목놓아 울었다는 감자를 보면서, 놀라웁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게 걱정이거나 이상스럽진 않았다. 안쓰러운 마음 한 편에는,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아, 감자도 이제 슬픔이라는 걸 아는구나.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을 아는구나. 슬픈 거, 그리운 거, 보고 싶은 거, 헤어지는 거, 기다리는 거, 그래서 더 반가운 거.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몇 달을 지내다 가셨을 때만 해도 감자는 아직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 뒤로 누군가와 헤어진다고 하여 그렇게 울며 찾는 일은 여지껏 없었다. 그런데, 혀엉, 혀엉 하며 구슬픈 목소리를 내며 슬픈 얼굴을 해. 그 다음 날 아침도 눈을 떠 일어나면서 구슬픈 목소리로 혀엉, 혀엉. 

 나보다 스물한 살이 어린 근이는, 어릴 땐 삼촌이라 부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나더러 형이라 부르고 있어. 감자는 근이보다 스무 살이 어리니, 근이는 감자에게도 자기에게 형이라 부르라고. 근이는 스물한 살 많은 나에게 형이라 하고, 감자는 스무 살 많은 근이에게 형이라 한다. 이렇게 형과 아우, 다시 또 형과 아우. 

 귀한 시간이었다. 감자품자에게도, 근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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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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