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0205

감자로그 2017. 2. 6. 16:47

 

 다시 토요일 저녁. 어쩌다 보니 이천육년을 보내던 마지막 날 뒤로, 촛불을 두 번 건너 뛰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젤로 바쁘던 때, 도무지 그땐 움직여볼 수가 었었고, 설 연휴에 이어지던 토요일이 있었으니 3주만에 다시 맞은 주말. 제주에는 아침부터 촉촉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저녁 무렵부턴 빗줄기가 세어질 거라 했으니, 품자까지 함께 나가기에는 무리가 될 것 같아.

 그래도 다녀오고 싶었다. 촛불, 그 자리. 거기에라도 나가 서 있으면 살아있는 느낌이 들까. 특검이며 헌재며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 싶으면서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겹기만 한 뉴스들을 띄엄띄엄 보면서, 마음은 자꾸만 거기가 궁금하고, 그리로 마음이 이끌려져. 감자랑 둘이서라도 다녀올게. 

 

  

 

 감자는 촛불집회를 "하, 야, 하, 라!" 로 기억한다. 그래서 감자에게는 "감자야, 하야하라 하러 가자!" 거나 "감자야, 테레비에 하야하라 나오네!" 하고 말을 하면 눈을 반짝 하며, 촛불을 손에 들고 흔드는 시늉을 보여. 그러고는 언제부턴가는 왼손을 쭉 뻗어올리며, 마치 사람들이 입모아 구호를 외칠 때 하는 손동작까지 따라하고 있어.

 

 그래, 감자야. 오늘은 아빠랑 둘이서만 갔다 오는 거야! 아빠랑 둘이서 데이트 하자.

 

 

 

 제주에선 열세번째, 설을 지나고는 새로 시작하는, 촛불. 빗방울이 적지 않게 흩뿌렸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천막 부스들도 더 다양해져서 어느 천막에서는 탈핵 풍선을 나누어주었고, 또 어느 천막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지우개도장 찍기를, 또 어느 천막에서는 만화가 아저씨가 앉아 촛불 든 사람들 얼굴을 그려주기도 해.

 

 

 

 감자도 그 뒤로 줄을 서서 만화가 아저씨 앞에 앉아. 아, 그런데 언젠가도 이 만화가 아저씨 앞에 앉았던 기억이 있어 ^ ^ 지난 해 봄, 품자가 백일을 맞고 그 다음 날, 백일떡을 들고 강정마을 삼거리문화제엘 갔을 때, 감자와 품자 얼굴을 그려주던 시사만회가 이동수 아저씨 ^ ^ 강정에서도 그림을 한 번 받았더랬지만, 촛불집회에서는 또 다른 기념이 될 것 같아 또다시 만화가 아저씨 앞에 앉았다.

 

 

  감자가 조금 더 커서 형아가 되었을 때 모습같긴 하지만 ^ ^ 그래도 기념이 되는 촛불광장의 캐리커쳐 ㅎ

 

 

 무대를 바라보며 감자는 눈을 떼질 못해. 무언가 마음 속 응어리며 간절한 그것들을 쏟아내듯 말하고 있기 때문일까. 감자에게는 그 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일 텐데도,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어쩜 그 마음만큼은 전해지기 때문인지도 몰라.  

 

 

 사람들이 구호를 외칠 때는 감자도 이렇게 조그만 손을 꼭 쥐어.

 

 

 그리고는 감자도 함께 손을 쭉 뻗어올려 팔뚝질까지 하네 ^ ^  

 

 

 여러 발언들이 이어지고 난 뒤, 무대에 오른 밴드의 공연을 볼 때는 완전 몰입이 되어 리듬을 타고 있어 ㅎㅎ

 

 

 행진이 시작할 즈음 빗방울이 굵어졌다. 아빠랑 둘이서만 나간 촛불집회. 행진이 시작해 촛불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짐짓 엄마가 찾아졌을까. 앉은 채 으앙 하면서 엄마를 찾기 시작하더니, 울음이 터져버려. 으응, 감자야, 엄마 보고싶어? 빗방울이 자꾸 떨어지고, 춥고, 잠오고, 감자 집에 가고 싶구나. 이야아아, 그래도 우리 감자 아빠랑만 둘이서 두 시간도 넘게 정말 멋지다. 얼른 엄마한테 가자, 엄마랑 품자랑 있는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감자를 뒷자리 카시트에 앉히고 운전을 하던 사십여 분, 운전대를 잡고서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네. 달래가 감자에게 자주 불러주던 노래. 요즘 자동차 놀이를 할 때마다 부르던 꼬마자동차 붕붕부터 핑크퐁 동영상에 나오는 상어가족까지. 노래가 끊이지 않게, 큰 소리로 계속 불러대어 그랬을까, 집에 닿았을 땐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ㅎ

 좋았다. 감자랑 둘이서만 다녀온 그 길이 좋았고, 삼주만에 다시 나간 그 광장의 촛불이 좋았다. 무대에서 발언하는 신부님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낼모레면 기차길 이모야들이랑 할아버지 신부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으니, 무대 아래에서만 인사를 하는 것으로도 반가워. 한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시원해지는 것 같아. 달래랑 품자는 맘마를 먹은 뒤였고,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 차려먹는 저녁밥상, 막걸리가 빠질 수가 있나! ^ ^

 

 

 

 행진 시작무렵 멀리서 감자를 알아보고 달려와준 딸기이모야가 건네준 노란 풍선. 집으로 뛰어들며 감자가 손에서 놓은 그거를 품자가 받아쥐고선 들어올리네 ㅎㅎ 라임이 딱딱 맞는 탄핵에서 탈핵까지! 잘 가라 핵발전소 ㅎㅎ  

 

 

 품자야, 다음 주엔 다시 엄마 아빠 감자형아랑 다 같이 촛불 마당에 나가자. 이젠 조금씩 날이 풀려가고, 머잖아 봄이 되겠지. 아, 맞다. 그러고보니 그날이 입춘이었어. 봄이 오겠구나. 품자를 맞이하던 그 봄도 이제 얼마 남지가 않아. 따사롭고 평화로운, 그리운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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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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