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217

품자로그 2016. 12. 20. 16:40

 

 제주시청 앞은 지난주말부턴 한 시간을 당겨 오후 다섯 시부터. 점점 날이 추워지고 있어서 감자품자랑 매주 길바닥으로 나가는 일을, 언제까지 더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난 주엔 품자가 많이 울고 힘들어했으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주중에 이틀이나 눈이 내려, 서귀포 현장에서 애월로 넘어올 때마다 겁을 먹게 하더니, 다행스럽게도 주말엔 날이 포근했다. 지난 주 품자가 힘들어하면서, 달래 또한 힘들어하던 기억에, 이번 주엔 감자랑 둘이서만 다녀올까, 물었더니 달래는 다 같이 갔다 오자며.

 

 

 지난 주하고는 달리, 이번 주엔 품자 컨디션이 너무나도 좋아! 집회가 펼쳐지는 내내 엄마랑 마주보며 얼마나 웃고 좋아하던지. 품자도 이제는 그 광장의 어둠, 꽃처럼 피어난 촛불들의 풍경에 익숙해졌을까. 그 차가운 길바닥, 꽁꽁 싸맨 채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촛불 꽃밭에 나 않아 있는 게.

 

 

 

 품자 촛불도 컵을 따로 만들 걸 그랬구나. 이번에는 엄마가 품자랑 함께 왕컵 촛불을 들어.

 

 

 주말마다 만나는 강정식구들. 제주시청 앞을 가득 메운 촛불들을 볼 때마다, 강정에 일이 터질 때 이 촛불들은 왜 이만큼 함께이질 못하곤 했는지,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오후 다섯 시 반쯤 되었을까, 탄핵안이 가결되던 지난 주말이나 직전이던 그 전 주말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많이 빠진 듯도 해. 준비한 깔개에 대면 빈 자리가 많았지만, 여섯 시를 넘으면서는 다시 사람들이 불어나게 되어.  

 

 

 엄마 손에 든 촛불, 얼굴에 가까이 대어주니 품자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품자도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이렇게 촛불과 함께. 이제 아홉 달박이에 접어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달을.

 

 

 여섯 시가 넘어가면서는 다시 이렇게 사람들이 가득히. 아마도 여섯 시가 익숙해 그런가보다 ㅎ

 

 

 주말마다 만나던 신부님이 연단에 올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할아버지 목소리. 강정에서 흘려온 눈물들, 그 꼭대기에 있던 자들을 이제야 흔들고 있어. 촛불의 힘이었다는, 촛불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올해로 서품 50주년이 되신 신부님, 그날이 바로 촛불이 열리던 그 전날이었다는 걸, 그자리에서야 알았다. 혹시라도 강정에서 50주년 기념 자리를 갖게 되면은 꼭 연락을 해달라, 부탁을 했건만, 조용히 조그맣게 기념하는 자리를 갖느라 그랬을까, 연락을 받지 못해, 오십 년, 길 위를 걸어온 신부님의 예수행을 함께 기리지를 못했다. 감자품자도 할아버지께 조그마한 감사 선물을 전하고 싶었건만.

 할아버지는 호랑이 같은 말씀을 마치고 나더니,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 하하하, 멋쟁이 신부님, 귀여운 할아버지!

 

 

 품자는 집회 내내, 행진을 하고 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앉아서도 엄마랑 눈을 맞추며 이렇게나 좋아해. 

 

 

 이젠 이 해도 석 주밖에 남질 않았네. 이천십육년, 개인적으로 우리 식구에겐 품자가 찾아와준 특별한 해, 그리고 이 땅에 촛불 은하가 흐르는 감동이 흐르던. 다음 주 촛불은 메리크리스마스 24일이라던가, 그 다음 주 촛불은 12월 31일, 이 해를 떠나보내는 날. 감자네는 그 촛불들 앞에서 메리크리스마스를 하겠구나, 담주엔 조그만 케잌이라도 들고 나가, 촛불이 아니라 케잌에 초를 꽂고 놀아볼까. 그 담주에는 촛불로 이 해와 안녕을 하겠구나. 품자가 찾아와준, 촛불 은하에 젖어들게 해주던, 이천십육년.

 

 

감자와 품자가 있어, 그리고 달래가 있어, 아빠도 씩씩해지려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걸 감자품자는 알까, 달래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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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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