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감자

감자로그 2016. 11. 28. 11:05

 

 감자야, 감자 오늘 정말 멋있었어. 그 차가운 광장에서만 열 시간을 넘게, 아빠 가슴에 매달린 채로, 감자도 촛불을 들었지. 아무리 꽁꽁 싸매었어도 칼바람이 볼을 베고, 옷깃 새로 파고들었을 텐데, 한 번도 칭얼거림이 없이, 아빠 품에 안긴 채, 너무나도 잘 있어 주었어.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을 때면 감자도 그 조그만 손을 들어올리고, 하야하야 밀양아리랑이 나오면 얼쑤절쑤 춤을 춰가며. 백만을 넘어 백오십만, 광장의 그 많은 사람들과 엇갈려 걸을 때면 누구라도 저마다 이 애기 좀 보라며, 사진 한 번 찍어도 되냐며, 다들 예쁘다고, 어쩜 이렇게 잘 있을 수 있냐고. 정말이야, 감자야. 감자를 안고 다니는 동안, 아빠는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높아진 것만 같더라.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기저귀도 다른 때만큼 제때제때 자주 갈아주지 못하고. 어느 땐가는 감자가 아빠한테 매달린 채로 잠이 든 것도 몰랐네. 손에 든 초가 스르르 풀려 떨어지고 나서야, 잠이 든 줄을 알아, 그러고도 한 시간을 넘게 그 찬바람 속,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고개도 떨구지 못한 채 잠을 자더라.

 

 

 감자야, 아빠랑 둘이서, 그 차고 험한 광장을, 그렇게나 잘 다녀주어서 정말로 고마워. 감자, 오늘 정말 멋졌단다. 아빠가 감자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말.

 

 

1.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

 

 굳이 그 광장이 아니어도, 여섯 차례를 이어온 제주에서도 촛불을 밝혀도 좋았으련만, 한 번쯤은 그 물결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때마침 재주에선 이번 주말 하야하롹이라는 음악인시국선언이 락페처럼 열릴 거라니, 제주와 광화문을 두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녀오기로 했다.

 촛불이며 광장이며, 그것도 그거였지만, 감자랑 아빠랑 둘만의 여행같은 시간에 설레기도 했어. 온전히 아빠랑 둘이서만,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밥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자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하지만 여느 여행하고는 달리, 백만이 넘는 인파가 가득할 촛불광장이기에, 걱정이 되는 것도 많았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감자는 콧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잠깐 따뜻하게 쉬거나 몸 뉘일 곳이 없을 텐데, 때마다 눈을 감아 낮잠도 자야하며, 먹을 거니 기저귀니 그런 것도 봐야 하며.

 그래도 가보자 싶었다. 감자야, 아빠랑 둘이 잘 할 수 있지? 우리 잘 해보자! 하면서.

 

 

 그래서 비행기를 타러 나가기 전 토요일 아침, 어디에서 사다먹은 컵도시락이 있어, 그걸 가지고 감자촛불을 급조해. 우아아아, 종이컵 촛불이 아니라 왕따시만한 감자 촛불이이야 ^ ^

 

 

 촛불 들러 가자 하니 감자는 손을 번쩍 들며 좋아했다. 하야하라, 하러 가는 거라 하니 하야송 나올 때 추는 것처럼 어깨춤을 추며 좋아해. 아빠랑 비행기타고 슈우웅, 하준이도 예준이도 이람이도 하야하라 하고 있대. 감자도 거기에 가서 하준이랑 예준이랑 이람이랑 만나자, 했더니 눈을 반짝이면서 몸을 일으켜 좋아해 ㅎ 그러고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나름 꽁꽁 싸매고 기저귀니 먹을 거니 가방을 챙겨매고는 집앞에서, 엄마에게 출정의 인사 ㅎ

 

 감자 촛불, 평화로운 나라! 이게 왕종이컵에 적은 감자와 아빠의 구호야. 감자는 공항에 도착해서도 왕컵 촛불을 세우고 놀면서 비행기를 기다려.

 

 

 드디어 슈웅, 촛불광장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자는 공짜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두 돌이 지나고부터는 감자도 표를 끊고 따로 한 자리에 앉게 되어. 두돌박이 감자는 이로써 벌써 열다섯번째 비행을.

 

 

 이걸 어쩌나, 차가울 날씨야 걱정을 했지만, 김포에 내리니 눈이 내리네. 비처럼 축축하게 내리는 눈. 그래도 잘 해보자, 감자야. 아빠가 잘 할게. 감자를 안고 비행기를 빠져나오는데, 단정하게 제복을 입은 남자 승무원이 우리를 가볍게 안아주며 웃는다. "추운데, 힘내세요!" 하긴 감자가 든 촛불 뿐 아니라 가방에도 이미 피켓 종이를 큼직하게 붙이고 있었으니, 감자랑 아빠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부터 이미 일인시위를 시작하고 있는 거!

 

 

 공항에 내리자마자 김밥을 풀어 일단 점심밥을 때우고 ㅎ

 

 

 

 고마웁게도 감자는 길바닥 아무데서나 밥을 차려 먹는데도 기분이 좋아 신이 나!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작한 감자의 일인시위는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광장에서도 계속 이어져 ㅎ

 

 

 제주에서 왔어요! 평화로운 나라, 감자 촛불.

 

 

 아빠랑 둘이서만 올라간 길, 아무래도 달래는 걱정이 가득할 텐데, 중간중간 엄마랑 영상통화도 하고, 감자 사진을 찍어 보내면, 엄마도 품자 사진을 찍어 보내줘. "지슬아, 촛불 잘 밝히고 와, 엄만 우슬이랑 집 잘 지키고 있을게"

 

 

 으응, 품자야. 감자 형아랑 아빠랑 서울 잘 갔다올게 ^ ^

 

 

 품자는 촛불 대신 딸랑이를 들고 ㅎ

 

 

 지슬아, 우슬이가 이렇게 형아를 응원해주고 있네.

 

 

2. 광화문 감자촛불

 

 

 드디어 촛불 광장에 도착. 집에서 열 시에 나와 열두 시 비행기를 타고, 어이어이 광장에 닿았을 때는 오후 세시가 다 되어. 저녁이면 발붙일 틈도 없다 하여 일찌감치 나선 길, 이미 광화문역은 지하철 내릴 때부터 사람들이 가득해. 우선은 사촌누나랑 큰아빠를 만나고, 감자를 기다려주고 있는 캠핑촌 어린이문학방에 해원 이모야랑도 만나고.

 

 

 그렇게 감자는 촛불을 들었다. 아빠 품에 안긴 채, 그 광장에서만 여덟 시간 가까이. 제주시청 앞에서 들곤 하던 감자의 촛불, 감자는 이 광장을 가득메운 사람들과 그 촛불 행렬 속에서 무어를 보았을까. 글쎄, 모르겠다만, 감자를 품에 안고서 아빤 또 무얼 보고 있는 걸까.

 이천십육년 십일월, 바람 찬 광장의 그 스산하고도 넘실거리던 풍경들. 그저 본 거라고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손에 든 촛불과 피켓들. 바삐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누군가를 찾느라 전화기를 귀에 대고 휘휘둘러보는, 더 발디딜 틈 없는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다니는. 광장 이쪽과 저쪽에서 떨어져 있다가 겨우 만나는 사람들은 이산가족을 찾은듯 반가움에 겨워했고, 그 광장 대부분에는 소위 시위꾼으로는 보이지 않는 언니와 형아, 아가씨와 아줌마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간혹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아마도 소싯적 대학 동아리 동문 쯤으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들은 이삼십년 전 외치곤 하던 구호를 바꿔가며 어린 애 얼굴로 둥그렇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곳곳에서 어깨동무가 이어지기도 했다. 광장의 본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면서는 그런 아저씨들 보는 재미가 더해졌어.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어쩌면 아빠도 감자를 안고 있지만 않았다면, 그 어깨동무 대열로 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소싯적 구호를 외치며 놀았을 것만도 같아. 꺾여버린 우리의 꿈, 간절하게 바라온 세상, 점점 더 악다구니 세상 속으로 떠밀려 살아가는 비루한 현실. 

 굳이 아빠가 제주촛불에 미련을 두면서도 서울까지 올라가 그 광장에서 본 것은, 그 풍경이었단다. 이 스산한 시절의 풍경, 눈시울 붉어지는 이 시대의 풍경. 그래, 어쩜 아빠는 그 풍경을 보고싶었던 건지도 몰라. 목놓아 소리치고 싶은, 땀인지 눈물인지 울면서 웃으면서 아무런 막춤 몸부림이라도 치고 싪은.

 

 

 그 발디딜 틈없는 광장에선, 아는 사람들끼리 위치를 확인하더라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우주에서 별똥별끼리 부딪힐 확률보다 더 없다던가. 하지만 감자를 안고, 둘이서만 있어도 하나도 지겹거나 그러질 않았네. 무대에서 무슨 판이 벌어지거나 상관없이, 아빤 순간순간 울컥하였고, 감자 옷깃을 여미면서 감자와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누었어.

 하지만 운이 좋았던지, 아는 이들도 많이 만날 수가 있었네. 감기기가 있어 보인다면서 난지도 삼촌이 대추에 생강에 파뿌리에 말린 귤껍질까지 다려서는 감자를 보러 달려와 주었고, 데모하는 자리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빠의 여동생, 그러니까 고모, 고모부를 만나기도 해. 동생이 하는 얘기, 시아버지가 나오라고 해서 나왔다나, 니들이 아무리 정치에 관심없고 그런다 해도 이런 때는 나와라, 하셨다니. 기연아, 시집 참 잘 갔구나, 싶더라 ㅎㅎ 캠핑촌 무대에 넋을 빼고 있다가 빡빡머리 병수 큰아빠를 만났고, 작가 몇이 술집으로 들어갔다기에 인사나 하자며 들렀다가 흰머리 휘날리는 재동이 큰아빠도 만났네. 빡빡머리 솟대 큰아빠를 만났으니 저렇게 솟대 앞에서 사진을 찍히기도 해야 했지 ^ ^ 정작 만나기로 한 기차길 식구들, 감자가 반가워할 친구들이랑 형아누나들 못만난 게 못내 아쉬웠지만.

 

 

 

 백만을 넘어 백오십만, 온나라에서 하면 백구십만이라던가. 반짝였고 넘실거렸다. 아마도 우주선을 타고 가다 은하수를 만난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거야. 그 은하수의 물결 속에서 감자도 아기별로 반짝였어. 아기촛불, 아기감자별.  

 별들이 흩어지고, 은하가 저물어갈무렵, 감자네는 낮은산 큰아빠네로 가 잠을 잤네. 따뜻한 잠자리, 원이누나야랑 민이누나야가 얼마나 예뻐해주던지 몰라.

 

 

품자가 감자 형아한테 형아, 멋있다! 잘했다! 하는 것만 같으네 ^ ^

 

 

  품자야, 다음 번엔 품자하고도 아빠랑 둘이서 여행하고 그러자.

 

 

 이야아, 감자야. 이제 집에 갈 거야. 다시 비행기 타고 슈우웅, 엄마랑 품자랑 있는 집으로 갈 거야.

 

 

 감자는 집에 돌아와 긴 잠을 잤다.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내릴 즈음 눈이 감기더니, 차를 타고 집에 닿아서도 그대로 곯아떨어져. 살짝 안아다 방에 눕혔으니. 글쎄, 감자는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일박이일, 그 긴 시간이 꿈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늘 잠자던 그 방에서 감자는 깨어나는 걸 테니.

 고마웁게도 감자는, 떠나기 전부터 감기기가 있어 콧물이 나오곤 했지만, 더 아프거나 하지를 않았다. 오히려 아빠가 녹초가 되어 감기에 앓아누워.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빠가 아니라 감자가 아팠다면, 그게 더 힘들었을 텐데. 아빠가 대신 아플게, 감자야. 고마워, 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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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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