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탑에서 강정

냉이로그 2016. 10. 18. 09:54

 

  지난 주말엔 육지에 올라가 조탑엘, 그리고 다시 내려와서는 어느 하루 강정엘 다녀왔다. 한참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하필이면 조탑 할아버지를, 하필이면 강정 할아버지를 만났던. 할아버지들의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정직하기에, 오히려 그 단순하고 정직한 답 앞에서 더욱 어지러울 수밖에 없던.

 

 1. 조탑에서  

 

 

 정확히 말하면 감자네 식구의 육지행은 조탑이 아니라 안동이었다. 넉넉한 휴가가 아니었음에도, 두 아기를 안고 비행기에 올라 육지까지 가려 했던 건 오로지 달래를 위한 선물로 마련한 거였다. 그동안 여유가 될 때마다 우도에 나가 하룻밤을 자고 오거나 또는 섬의 남쪽으로, 동쪽으로, 중산간의 숲으로 바람을 쏘이러 다니거나 하여도 육아에 지친 달래의 스트레가 가벼워지질 않아. 오히려 달래에게는 그런 나들이가 더 버거운 일이기만 할 정도였으니. 생각다 못해, 달래가 맘껏 수다를 나눌 수 있는, 달래에게 가장 오랜 단짝인 달라가 있는 안동엘 가자는 거.

 그러나 안동으로 간다 하여 다 될 일은 아니, 지난 여름에도 달라가 제주에 내려와 감자네 집에 다녀가긴 했지만 감자와 품자, 아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아무래도 시선이나 신경이, 대화의 모든 주제가 아가들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어. 그래서, 안동에 가거든 감자는 아빠가 데리고 둘이서 돌아다닐 테니, 이번에야 말로 달라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하자고 한 거. (아직 품자는 엄마 품에 안겨, 그나마 가만히 있을 수 있을 테니.)

 그랬던 거였다. 그래서 감자와 둘이서 조탑엘 가기로 한 거였고, 그래야지 생각하면서 보령의 피네 아저씨에게도 연락을 했던 거. 그러저러해서 감자랑 둘이 조탑엘 갈 건데, 아저씨도 올래요? 아저씨는 한참 정생 할아버지 글에 그림 작업을 하고 있던 터에다, 마침 일직에 있는 어린이재단에서 아저씨의 그림 전시가 있기도 하여, 날을 맞추어 아저씨도 건너왔다.

 

 

 

2. 강정에서

 

 

 감자네가 안동에 가 있을 때 기차길 큰이모에게 연락이 왔다. 강정에서 거리미사 5주년이 되는 날, 인천강화식구들이 내려갈 건데, 함께 할 수 있겠는지를.

 다섯 해가 되는 날이라 했다. 하루도 뺌 없이 길바닥에서 미사를 드린지가 다섯 해. 삼백예순다섯을 다섯 곱절 해보니 천팔백스물다섯 날. 곧 5주년 미사가 있을 거라는 웹포스터를 보고 있긴 했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평일이었고, 달래와 아기 둘이 따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아예 참여한다는 건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기차길 식구들이 저 멀리에서 내려온다는 소식. 감자 아빠가 일 나가 있으면은 기차길에서 빌린 차로 감자네 집에 들러 함께 타고 가자며.

 강정도 강정이었지만, 게다가 감자와 친구인 하준이, 예준이까지 내려온다는 소식에, 무리를 해서라도 가보기로 하였다. 최대한 일을 빨리 마쳐놓은 뒤에, 비록 미사에 참여는 못하더라도, 미사 뒤에라도 강정에 넘어가 신부님도 뵙고, 강정 식구들도, 그리고 기차길 식구들과 감자의 친구 예준, 하준을 만나러.

 신부님이, 안나샘이, 딸기가, 그토록 평화센터 내부 일들로 아파했는지를 몰랐다. 이모들에게 얘길 듣고 나니 더 미안한 마음만. 이렇게 제주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신부님께도, 안내 샘에게도 아무 힘이 되어드리질 못하고 있어. 속상한 얘기 들어줄 상대라도 되어드려야 할 텐데, 그조차도 하지를 못해.

 그래도 기차길 식구들이 저녁까지 함께 하며, 인천에서 온 하준이, 예준이에 감자와 품자까지, 이날 하루만큼은 신부님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치길 식구들마저 내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던. 기차길 식구들 덕에 감자네도 찾아가 함께 할 수 있던.

 

 

 평화센터 입구에 차려놓은 신부님의 공방에 들렀다가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았다. 신부님이 나무판에 새긴 글씨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기차길 식구들에게 선물한 그것은 공부방에 꼭 어울리는. 그러더니 감자네에게도 작은 나무판 하나를 쥐어주셨어. 세상에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런데 더 놀라웁던 건, 그 조그만 나무판 안에 새긴 글귀였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감자네에게 주신 글귀가 어떤 건 줄 아느냐며, 함께 기뻐하던 이모들이 나무판을 돌려 보여줬을 때, 순간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것만 같아. 아, 하필이면 조탑에서, 또 하필이면 강정에서, 이 할아버지들이 혼이라도 내주시는 걸까.

  너무나도 크고 무거운 선물. 뼛속으로 새길 말. 그 글귀를 받아 돌아오는데 왜 자꾸 울고만 싶어지던지. 조탑 할아버지가, 강정 할아버지가, 강냉이 그림책이, 기차길 식구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단순하고 깨끗한 말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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