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형아의 구월 한 달에는 당근 나란히 품자가 있어. 지구별에 오고 여섯달 째를 지나던 초가을 날들. 품자와 같이 태어나던, 말하자면 조리원 동기 아가들은 벌써 기고, 앉고, 과자도 먹고 그런다지만, 느리다느린 품자는 여태 기거나 앉지도, 엄마 젖 말고는 암 것도 먹을 줄을 몰라. 전화기 안에 담아놓은 품자 사진들을 갈무리해놓았더니, 이불 위에 엎드렸거나 유모차에 앉아있는 게 다이기는 하지만, 품자는 이렇게 쑥쑥 커가고 있어.
그 시간의 사진들을 주렁주렁.
1. 어린이 놀이터 / 0829
어쩌다가 연동 시내에 있는 놀이터까지 갔었을까.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밥을 먹자고 했던 거 같아. 아빠가 자주 다니던 길에서 본 어느 식당, 자연음식점이라 써붙인 걸 보고는, 언제 한 번 감자품자랑 다같이 가봐야지 점찍어두었다가 나선 길. 손님이 많다고 기다리라는데, 마침 그 식당 앞엔 커다란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네. 감자 형아랑 엄마는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품자는 그늘이 있는 자리를 찾아. 하하하, 품자는 그저 눈만 맞추어도 모가 그리 좋은지.
2. 평대리 비자나무 숲 / 0906
감자 형아는 벌써 세 번째이지만, 품자는 처음 가보는 길. 어마어마하게 높다랗고 커다란 나무들. 그 할아버지할머니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달고 맛있는 공기.
해가 바뀌고 다시 찾아올 때는 감자 형아가 그러는 것처럼, 품자도 이 숲길을 함께 걷고 뛰고 그럴 수 있겠지.
3. 우도 둘쨋날 / 0909
감자 형아랑 아빠는 바다에 첨벙 뛰어노는 동안, 품자랑 엄마는 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예쁜 바다를 뒤로, 그보다 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품자랑 엄마가 눈맞추는 동안,
감자랑 아빠는 저 아래에. (자세히 보면 째그맣게 보이고 있음 ㅋ)
4. 신창 풍력발전단지 / 0910
여기에서도 품자는 유모차에 앉아 있는 사진 밖에 남아있는 게 없긴 하지만 ㅠㅠ 커다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서쪽 바닷가에서 품자도 실컷 바람을 맞아.
5. 품자네 집 / 0911
감자 형아가 여섯 달을 지날 때는 어땠더라. 그땐 엄마아빠 모두 감자 형아만을 보고, 어디엘 가더라도 감자 형아만을. 그랬던 거에 대면 품자는 어쩜 서운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감자 형아에게 눈길을 거둬 품자만을 보아줄 수가 없다는 걸, 오히려 서운함을 알아가는 감자 형아 마음이 다칠까, 둘이 같이 있을 때면 감자 형아 눈치를 보아가며 품자를 안거나 눈맞추어 놀아야 할 때도 없질 않으니. 그래서 늘 안쓰럽기만 한데, 그래도 품자는 엄마아빠가 눈만 맞추어주어도 이렇게나 좋아해.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이 갓난 아기가 기다린다는 게 무언지를 알다니. 물론 그건 감자 형아도 마찬가지. 아빠는 일하러 나가있고, 엄마가 품자를 안아 젖을 물려야 할 때, 감자는 혼자 조용히 장난감 상자 앞으로 가 등을 돌리고 장간감을 만지작만지작. 감자 형아에게 미안했다가, 품자에게 미안했다가. 그러면서 동시에 감자가 고마웁고, 품자가 고마운.
6. 추석날 할아버지네 집 / 0914
품자를 낳을 때 서울 할머니가 내려와 계셨고, 그 뒤로 외할아버지외할머니도 이 섬엘 건너와 품자 얼굴을 보고 가셨지만, 아직 광명시 할아버지할머니는 품자를 보지 못해. 그러다 추석을 맞아 올라간 할아버지댁. 여기 할머니는 아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아기랑 얼마나 재미있게 놀아주는지.
할아버지는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줄줄. 품자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전해드렸을까. 아빠가 어릴 적 많이 미워하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아빠는 할아버지를 빼 닮아가더라. 지금은 할아버지가 너무 힘이 없어.
7. 다시, 품자네 집 / 0916
아마도 바깥 나들이를 다닐 때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러니 그 뒤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감자 형아를 쫓을 수밖엔 없던 게지. 그랬으니 그 어느 순간 전화기를 꺼낼 때도 감자 형아가 노는 모습을 담기에도 벅차. 나들이를 나간 날들에도 품자는 유모차에 앉아있는 모습밖엔.
그러다 어느 날, 엄마 전화기에서 이날 사진들을 보는데 얼마나 환해지던지. 아마도 그런 때였나 보다. 아빠는 일을 나가고, 감자 형아는 낮잠을 자는 시간, 오롯이 품자랑 엄마랑 둘이서만 눈맞추어 웃고 놀 수 있는. 그런 때 품자는 엄마와 눈맞추며 한껏 신이 나고, 맘껏 즐거워.
하하하, 이 옷. 작년 가을, 솟대큰아빠가 다녀가면서 감자 형아 옷에 찍어주었던 그 옷이구나. 물론 다른 옷들도 다 감자 형아가 입던 것들이지만, 새삼 이 옷을 입고 다니던 감자 형아가 떠올라.
8. 형아랑 둘이서 / 0918
파하하하하! 이것 역시 달래 전화기에서 보게 된. 아무리 감추려 해도 한 번씩 감자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을 수가 없고, 이즈음 들어 품자는 감자 형아가 뭐라도 하면 궁금해서 그리 굴러가. 아직 기는 것도 할 줄은 모르지만 어찌어찌 방향을 바꾸고 몸을 뒤집어 굴리면서, 저 원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는 게 참 신통하긴 한데. 암튼, 그리하여 감자는 휴대폰으로 동영상 찍어놓은 거를 찾아서 보고, 품자도 형아, 모해애? 하면서 감자 곁에 딱 붙어서 ㅋ
아마 달래는 그런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었겠지. 그러다가 두 아기가 사진찍는 엄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꼭, 형제 둘이서 엄마 몰래 하지 말란 짓을 하다가 딱 걸린 모습야 ㅎㅎㅎ
형아, 모해애?
형아, 나도 좀 보자아!
형아,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모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거야아?
몬진 모르지만 형아가 하는 거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아하하 재미있다아.
와하하, 엄마가 보고 있었네 ^ ^
으아아, 엄마한테 딱 걸렸다! ㅠㅠ
9. 더럭분교 / 918
더럭에 놀러 나갔던 날, 역시나 품자는 유모차에 앉아 엄마아빠가 눈맞추어 줄 때만을 기다릴 수밖에. 형아는 신이 나서 운동장을 내달리거나 흙장난을 하기도,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하기도, 평균대에 매달려 맘껏 놀지만, 품자는 그저 바깥 바람을 쏘이고 햇볕을 맡는 것 만으로도.
유모차에 앉아만 있는 게 잠이 와 하품을 하다가도
엄마가 눈을 맞춰주면 그저 좋아.
형아는 모를 하고 놀구 있나아.
운동장 바닥에서 돌을 캐내면서 모가 그리 좋은지.
그래도 이젠 형아가 유모차를 밀어주기도 하질 모야!
10. 누워만 있지만 쑥쑥 / 0920
누운 채로 눈맞추며 웃고 바동거리는 모습. 만날 같은 사진인 것 같지만, 엄마아빠가 볼 때에는 하나도 같지 않은 다른 사진들야. 이것 보라지, 품자는 이만큼을 또 쑥쑥!
11. 이유식 첫날 / 0922
여섯 달을 꽉 채우고도 열흘도 더 지나, 품자는 처음으로 엄마젖 아닌 다른 걸 입에 넣었네. 감자 형아만 해도 벌써 이유식을 시작했고, 강판에 과일을 갈아주면 맛있다고 움냐움냐, 더 달라고 움냐움냐 그랬건만, 품자는 엄마젖을 잘 먹어 그런지 다른 건 찾지를 않아. 이날도 쌀가루를 곱게 빻아 미음보다 더 연하게 쑤어주었거만, 품자는 입으로 넘기려 하질 않아 ㅠㅠ 그래서 겨우 혀에 묻히고 입술에 묻히다 뱉어내고만 마는.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쩜 이렇게 살이 올라 형아만큼이나 몸무게가 나가는지. 품자는 엄마젖이면 그걸로 충분해 그런 거니, 다른 거는 암 것도 먹고 싶은 게 없는 거야? ㅎ
12. 서귀포 농업기술센터 / 0923
감자 형아가 저 멀리 석재 전시장에서 엄마랑 같이 땀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동안, 품자랑 아빠는 벌써 이만큼 나와 기다리고 있어. 돌덩이들을 끌어안고 올라타고 그러면서 형아는 도무지 올 생각이 없는가봐. 형아를 기다리면서 아빠랑 누을 맞추며, 품자는 그것만으로도 좋다며 발에도 힘을 주어 발가락들을 쫙 펴가면서 바동바동.
13. 이번에는 형아가 떠주는 / 0924
품자 이유식을 주려고 미음을 준비하니, 감자가 쫓아오며 더 좋아해. 입때껏 엄마젖만 무던 품자도 숟가락으로 무언갈 떠 먹여주려니 그게 신기한지, 손뼉을 치며 좋아해. 그러더니 자기가 떠 넣어주겠다고, 숟가락을 달라고 ㅎ 감자 형아는 뭐든지 엄마아빠가 하는 거면 자기도 해보겠다며 따라하고 싶은가봐. 하지만 품자는, 왜 자꾸 이걸 나보고 먹으라는 거예요, 하는 얼굴이지 모야 ㅎㅎ 참 이사하단 말이지. 감자 때는 처음부터 어쩜 그렇게 잘 받아먹는지, 이유식도, 과일 갈아주는 것도, 씹어 삼키지 못할 옥수수 알도 꿀떡꿀떡이었는데, 품자는 자꾸만 뱉어내려고만 하네. 이건 엄마젖이 아니잖아, 엡떼엡떼엡떼떼 ㅎ
14. 감자 형아가 낮잠을 자는 동안 / 0925
눈치를 본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품자를 안아주고 품자와 놀아주고 한껏 품자를 품을 땐, 아닌 게 아니라 감자 눈치를 보곤 한다. 눈치가 아니라 배려랄까. 그렇다고 감자가 까탈스럽거나 예민하게 어떤 질투나 샘을 부리지는 않지만, 내가 집에 있을 때도 달래가 품자를 안고 한껏 행복해하고 있거나 할 때면 감자가 동작을 멈추고 무언가 서운한 눈빛으로 그쪽을 지긋이 쳐다보곤 해. 그런데 거꾸로 감자와 한껏 행복해하는 동안에는, 마음 한 구석 품자가 어떨지 또한 안쓰럽기도 하지만, 감자를 신경쓰는 만큼은 아닌 것 같아. 아직 품자는 감자만큼 그런 감정을 모른다 싶어 그런 걸까, 아님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니 모를 거라 생각되어 그런 걸까. 그러다가도 혼자 바동거리며, 혹은 형아를 부러운 눈길로 보는 품자 모습에 안쓰런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암튼 그 복잡미묘한 마음들.
그러니 감자가 낮잠을 자거나 하여 오롯이 품자하고만 둘이 눈맞추며 한껏 품어 안아줄 수 있는 시간. 아마도 그러할 때 달래는 휴대폰 사진기를 셀카 모드로 해놓고 사진을 찍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감자 때는 시시각각 사진들도 참 많았지만, 품자는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15. 날아라, 품자야 / 0927
아빠가 일하러 나가있는 동안, 품자는 엄마랑 이렇게 잘 놀았구나. 이젠 엎드려서도 그닥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어. 한참을 그렇게 엎드려서, 마치 아톰이라도 되어 날아갈 것처럼, 생긋생긋 웃으며. 날아라, 품자야!
16. 엄마랑 셀카 / 1002
감자 형아가 아빠 안경을 얼마나 갖고 놀았는지, 안경다리가 다 휘고 구부러져. 그래서 억지로 안경을 써보면은 무슨 코메디에 나오는 것처럼 한쪽 안경알은 올라가고, 한쪽은 내려가고. 그런 채로 한 달 넘게를 보내다가, 아빠 안경을 맞추러 다녀온 날. 이날 엄마는 평생 한 번도 안경을 써본 일이 없다며, 한 번 써 볼까, 하며 만 원짜리 알없는 안경 하나를 골라. ㅎㅎ 맨날 집에서 아가들하고 꼼짝 못하고 지내야 하니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그래서 엄마도 알없는 안경을 사서 끼고는 집에 돌아온 날.
아빠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감자랑 품자랑 엄마랑 셋이서만 셀카를 찍으면서 놀고 있는 거라. 우이씨, 나만 왕따야, 하면서 장난삼아 삐진 얼굴을 하였더니, 아빠도 끼워주자 하면서 다시 찍은 감자품자네 집 셀카 사진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넷이서 셀카를 찍은 건 처음이 아닌가 싶어 ㅎ
품자는 어리둥절, 감자 형아는 혼자서 완전 신이 났네 ㅎㅎ
17. 품자도 그림책 / 1003
만날 형아만 보곤 하던 그림책, 품자는 누워 바동거리며, 몸을 굴려 엎드려가면서 어깨너머로 형아가 몰 하나 궁금해하기만 하였는데, 품자가 팔 뻗어 닿은 자리에 그림책이 놓여 있어. 이때다 싶은 품자는 그림책을 하나하나 넘겨가는데, 어머나, 품자야! 품자도 이렇게나 그림책이 보고 싶었구나. 형아한테는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그 핏덩이를 안고서 정생이 할아버지 동시를 읽어주기도 하고, 한달박이 두달박이일 때도 안고 재우면서 그림책, 동화책 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품자에겐 그마저도 하나도 하질 못했네. 그동안 형아가 엄마아빠랑 그림책 보며 얘기하고 노는 거를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얼마나 마음으로 나도 보고 싶어, 말을 했을까. 이렇게나 책장을 잘 넘겨가며 그림책과 잘 노는 걸. 품자에게는 형아한테만큼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 자꾸자꾸 미안해.
한참 그림책을 잡고 노는 품자에게, 으흐흐 이번엔 엄마가 사온 알없는 안경을 ㅎ 우와아앙 똘똘해 보인다 ㅋ 그렇게 알없는 엄마 안경을 쓴 채로, 이번에 손에 잡은 책은 형아가 좋아하던 사과가 쿵!
품자를 보며 달래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예쁘다, 하는 말보다, 어쩜 이리 착할까. 품자는 참 착해, 너무 착하지, 그치? 하는 말들. 밥을 먹이건, 옷을 갈아입히건, 목욕을 할 때건, 아니면 숨바꼭질이며 미끄럼타기 말타기며, 무얼 하나 하더라도 활동반경이 점점 커져만 가는 감자 형아 뒤를, 엄마아빠가 쫓아다녀야 하느라, 품자는 가만히 눕혀놓을 때가 많아. 그러면 품자는 누워 바동거린 채로 그 시간을 가만히 다 기다리고 있는. 어느 순간엔 서운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 어려, 못내 안타까웁고 미안할 뿐이지만, 그래도 품자는 낑 소리 한 번 내지를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그저 눈으로만 엄마아빠를 쫓으며, 혼자 눕혀진 채로 제 손을 빨고 놀면서.
더더구나 아빠는, 감자 형아 때처럼 하루종일 집에서 같이 있지도 못하고, 아침에 일나갔다 저녁에 들어와서는 집안 일 하느라, 감자 형아에게 멱살잡혀 끌려다니느라, 품자에게는 하루 한 시간도 제대로 안아주질 못한 날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도 희한한 건, 품자는 멀리서 아빠 목소리만 나면 엄마 젖을 먹다가도 젖을 떼고 고개를 돌린다는 거. 그러고는 얼마나 환하게 웃어보이는지. 달래가 자주 얘기하곤 한다. 품자 좀 봐 줘, 아까부터 아빠만 보고 있잖아. 그러면 정말, 품자는 언제부터였는지, 아빠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 있네. 눈맞추어 달라고, 나 좀 봐 달라고, 보아줄 때까지 그저 가만히 한참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