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네 식구도 여름휴가라는 걸 보내었다. 아직 하고 있던 공사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현장정리하는 정도의 일만 남기고 있었으니, 회사에도, 감독부서에도 허락을 받아 휴가를 쓸 수 있었어. 칠월말부터 팔월 첫날까지, 괴산으로 기차길옆작은학교 캠프엘, 다녀와야지 했으니, 그 월요일이 끼어있는 일주일을. 그리하여 닷새 휴가에 앞뒤로 주말을 붙여 아흐레가 되었던 휴가.

 

 휴가의 시작은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캠프에 함께 하는 거였고, 그 끝은 밀양에서 송전탑반대 싸움을 해온 할머니들과 함께 강정에 가는 걸로 마무리 지어졌다. 기차길 캠프에서 돌아오던 날부터 제주에서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강정평화대행진의 걸음이 시작되었다. 감자네 식구 휴가와 꼭 같은 닷새. 어느 구간이라도 감자를 안고 걸어볼 수 있을까, 품자를 유모차에 뉘여 밀고 걸어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달래와 감자, 품자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어. 아쉽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릴 수는 없고, 그나마 행진팀이 감자네 집 가까이를 지날 때나 행진 마무리 하는 행사 때 나가보기로 계획을.

 

 휴가 계획이라는 걸 꽉 짜놓고 있던 것도 아니었건만, 어쩌다 보니 아주 꽉 찬 휴가를 보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캠핑을 다녀온 뒤로, 어느 하루는 섬의 반대편엘 다녀오기도 하였고, 또 어느 하루는 이 섬에 딸려있는 또다른 부속섬엘. 그리고 그 어느날은 그림그리는 이모야의 감자네 집 출판기념회를, 또 다른 날에는 노래하는 이모야의 감자네 집 콘서트라는 동화같은 밤. 그러면서 짬짬이 함께 했던 강정평화행진에, 전혀 예정에 두지 않았던 밀양 할머니들과 함께 찾은 강정, 강정의 할아버지 신부님.

 

 아마 머리를 싸매고 휴가계획이라는 걸 짠다고 했대도 이렇게나 가득한 시간을 보내진 못했을 거.  

 

 휴가라니,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군복입고 지내던 시절을 빼고는 휴가라는 게 처음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직장생활이라는 걸 시작했으니, 그 고달픔이란 거에 대해서도 이제야 겨우 알아. 휴가받은 날짜가 반이 넘어가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쉬웁던지. 그러나 그 꽉찬 아홉 날을 다 지나고 나니, 어느 하루도 아쉬웁거나 그러지가 않아. 나로서도 처음이고, 감자품자네에게는 당연히 처음이었을 여름휴가는 그렇게 지나갔다.

 

 참 좋았다. 

 

 

 

 

 

1. 기차길옆작은학교 캠프

 

 

 

 

 공부방 캠프 얘기는 십 년 전부터 들어오던 거. 아이들 뿐 아니라 이모삼촌들도 캠프, 캠프하며 여름방학 캠프를 기다렸고, 캠프를 다녀오고 나면 그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이야기를 들어오곤 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공부방 아이들이 만들어 보내오는 공부방 신문 '칙칙폭폭'에는 캠핑 이야기만으로도 자리가 모자랄 만큼.

 

 그런 캠프에 공부방에서 감자와 품자를 초대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일. 평일이 끼어 있는 금토일월을 무작정 다녀올 수도 없을 뿐더러, 아직은 제주 시내를 나가더라도 두 아가와 아가의 짐보따리를 싸들고 다니기에는 녹록치가 않으니. 초대만으로도 고마웁고, 우리를 받아주는 그 마음만으로도 기뻐하면서, 다음에 감자품자가 좀 더 크면, 하면서 못가는 게 당연한 거라 여기고만 있었는데, 공부방 이모들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달래하고 감자품자를 공항까지만 데려다 주라고, 그러면 그때부턴 공부방에 있는 이모삼촌들이 알아서 다 챙기고, 함께 보아주면 될 테니, 주말에 냉이가 데려다 주기만 하라고.

 

 친구들, 형아들을 만나면 감자가 얼마나 좋아할까.

 이모 삼촌들 품에 안기면 품자가 얼마나 좋아할까.

 

 갈 수 있을까? 말을 꺼낼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못 그럴 거라는 전제 아래에서 막연한 그림을 그려보는 거였는데, 그렇게 시작한 상상은 용기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회사에도 휴가를 기차길 캠프가 걸려 있는 월요일부터 일주일로 맞추고, 한라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사도 최대한 캠프 전까지 주요공정을 마칠 수 있게 해놓고, 육지로 가는 비행기에 타올라.

 

 

 

 

 

 

  아! 그리고 이건 캠프 때 사진들 가운데에서 아가들이 사과 먹을 때 모습들 ^ ^ 나도 나중에서야 카톡으로 사진을 받으면서 보게 되었는데, 감자 이 녀석 ㅋㅋ 지 얼굴만한 사과 하나를 받아들고는 얼마나 필사적으로 사과를 먹던지 ㅎ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 ^

 

 

 

 

 

 

 


 

 

 

 

2. 물고기를 보러 찾아간 섬의 반대편

 

 

 

 

 막연히 휴가 때 어딜 가보면 좋을까, 하면서 마땅히 손꼽아지는 게 있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아가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쉽지를 않아 달래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게다가 이어지느 폭염까지. 그러다 달래가 떠올린 게 아쿠아리움 같은 수족관엘 가자는 거. 마침 감자는 요사이 물고기라는 거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었어. 어느 날 고내포구에 나갔다가 낚시꾼의 낚싯대 끝에 매달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본 뒤에는, 물고기 그림이나 인형을 볼 때마다, 손바닥을 뒤집고 흔들면서 팔딱거리던 그 물고기 흉내를 내. 

 

 그래, 괜히 실내에 갈만한 데랍시고, 갔다오면은 후회만 하게 될 이상한 박물관, 전시관 같은 데 말고, 그런 수족관이 좋겠다! 하면서 계획을 해. 그런데 감자네 집은 섬의 북서쪽, 아쿠아플라넷은 섬의 남동쪽.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자가 좋아하겠다! 하면서 기꺼이 집을 나서.

 

 그러나, 굳이 이번 휴가 기간 중에 가장 아쉬운 걸 꼽자면 달래도, 나도 거기에 다녀온 걸 꼽곤 했다. 동물원이라는 데가 그렇듯, 수족관이라는 데도 그 안에 갇혀 사는 목숨들을 보는 일은 즐거울 수만은 없으니. 게다가 중간중간에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쇼라는 이름으로 벌이고 있는 것들을 지나칠 때는,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게, 무슨 죄라도 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몇 해 전에는 <감자네 식구는 돌고래쇼를 보지 않겠습니다>라는 서명에 인증샷까지 하질 않았나. ㅠㅠ 부러 돌고래쇼 공연장으로는 걸음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목숨을 그렇게 구경거리 삼아 가두어키운다는 거는, 즐거울 수가 없는 일 ㅠ

 

 

 

 

 

 

 

3. <큰할망이 있었어>, 감자네 집 출판기념회

 

 

 

 감자네 식구의 휴가가 있기 전부터 영화 이모와 약속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 지난 가을에 제주그림책시민모임에서 연 그림책 워크삽이라는 게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만든 영화 이모야의 그림책. 제라진엘 놀러갔다가 영화이모야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 출판사로 연락을 했던 것이, 그게 시작이 되어 이렇게 멋진 그림책으로 태어나게 되어. 그 작업이 반 년 넘게 이어졌고, 드디어 출간이 되었다며 책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그러더니 오겠다던 날은 아직 책이 제주에 들어오지 않아 못간다며, 그 다음 날에 다시 오겠다고, 그러다가 그러려면 차라리 감자 아빠가 휴가를 쓰고 있는 주에 약속을 잡자고, 하면서 미뤄지고 있던.

 

 그전날까지만 해도 이날도 감자네는 비양도라는 섬엘 갔다 와야지 하고 있어서 약속을 할 수가 없었는데, 오전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무래도 배를 타고 들어가 차도 없이 섬을 다니기에는 무리이겠다 싶어 계획을 취소했던 거. 그런 바람에 영화 이모야가 마침 잘 되었다며 섬의 서쪽 감자네를 다녀가.

 

 그래도 이 따끈따끈한 첫 책을 들고 일부러 감자네 집을 찾아주는 건데, 케잌에 촛불이라도 켜고 감자네 식구하고라도 조그맣게 출판기념회를 해야지, 생각했던 것이, 또 우연히 해남에서 여행온 깜과 지선 부부, 그리고 소길리의 다함이네 식구까지 다 같이 만나게 되어 제법 여럿이 함께 한 출판기념회가 되어버려 ㅎ

 

 정말로 축하하는 마음. 나보다 한 살 아래이니, 늦다면 늦은 작가의 첫 책. 영화 씨의 솜씨는 그림 뿐 아니라 바느질이며 설치, 조형 그 어느 것 하나에 머물러 있지가 않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들. 정말 좋은 작가, 좋은 작품들을 해낼 것이라 믿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4. 선경 이모야의 감자네 집 콘서트 

 

 

 

 감자네 여름 휴가 가운데 하루는 승민 삼촌, 선경 이모야네랑 만나기로 하였다. 감자네가 동쪽으로 가건, 아님 승민선경네가 서쪽으로 넘어오건. 그러다가 감자네가 목요일엔 곽지 해변엘 나가 강정평화대행진 팀을 응원하러 나가볼 거라 했더니, 그날 서쪽으로 넘어오겠다고.

 

 여러가지 일로 오뉴월을 정신없이 지낸 승민선경네는, 그간 했던 작업물 가운데 하나인 선경의 가사집을 감자네에게 선물하겠다고, 전부터 만날 날을 함께 꼽고 있었다. 지난 해부터 시작한 '책만들기 워크숍'에서 선경이 만든 거는 자신이 짓고 노래한 곡들의 가사집을 만드는 거. 마침 그 가사집을 최근에 완성했다며, 그것도 재단기를 사서 손으로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해서 만든 세상에 단 한 권 뿐인 걸로 만든 그거를.

 

 생각지도 못했다. 감자네 집에서, 선경 이모야가 공연을 펼쳐줄 줄은. 그저 오랜만에 만나 얼굴이나 보자며, 그 때 만나면 가사집도 선물할 거라며,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여줄 줄이야.

 

 

 

 

 

 

 

5. 감자네 식구, 비양도 한 바퀴, 그 한 마디.   

 

 

 

 제주섬에는 섬에 딸린 섬들이 여럿 있어. 그 가운데 감자네가 살고 있는 서쪽 바다에 걸려 있는 비양도라는 섬 하나. 그림책에서만 보던 배, 감자품자와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 보고 싶기도 하였고, 곽지나 금능 바다로 나갈 때마다 가까이 바다 건너에 떠있는 작은 섬이 궁금하였던 아빠엄마는 그리로 하루 다녀오기로 해.

 

 아침에는 찌는 듯 해가 쨍쨍이더니, 감자네가 배를 타러 나가면서부터 갑자기 하늘이 우르르쾅쾅.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배에 올랐고, 배를 타고 넘어가서는 한동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올 생각까지는 아니었기에, 이거 섬 구경은커녕 비만 피하다가 다시 나가는 배를 타겠네, 싶기도 했지만 다행이 비가 그쳤고, 그 비로 인해 오히려 찌는듯한 땡볕이 가셔지는 바람에 더욱 좋았던 섬 한 바퀴.

 

 호젓한 길을 함께 걸으니 평소 표현하지 못하던 마음의 말문이 열렸을까.

 

 "고마워 오빠, 오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새벽부터 일어나 밥 차려놓고 일 나가고,

  일하고 들어와서 빨래하고……" 

 

 "고생은 모, 니가 더 고생이지……"

 

 하고 대꾸를 하는데 목이 꺽 메어져. 아마도 나는 평소 별로 표현이 없는 달래에게 적잖이 서운하기도 하였을까. 나름 애쓰고 있는 만큼, 서로 알아주면 좋겠다 싶은데, 그래달라면은, 경상도 여자는 그런 거 못한다며, 표현 한 번 없던 뚝뚝한 아내에게.

 

 내가 먼저 왈칵, 하니 말을 잇던 달래도 울컥을.

 

 그 대화 하나만으로도 지난 육아 스물두달의 피로가 모두 씻기우는 것처럼 가볍고 좋았다. 이번 여름 휴가에서 가장 좋았던 말 한 마디, 그 때 오가던 마음의 온기. 갑자기 비양도의 모든 풍경이 새로웠고, 보이는 것마다 아름다웠다. 이젠 다 괜찮아, 아무 것도 문제 될 게 없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며칠 끙끙대고 아프던 어깨까지 싹 씻기워진 것 같은 ^ ^

 

 

 

 

 

 

 

 

6. 평화야 고치글라, 강정평화대행진 문화제

 

 

 

 아쉽지만, 감자를 안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건 내년에나 할 수 있을 테니. 올해는 그저 행진단이 감자네 집 가까이를 지날 때나, 마지막 날 행진을 마치는 문화제에 가서 이모삼촌들을 응원하는 것 밖에. 하지만 이 더위 속에서는 그렇게 잠깐씩 응원하러 나가는 것만 해도 젖먹이 품자를 안고 시도때도없이 젖을 물려야 하는 달래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어느 저녁이던가, 달래에게 고맙다고. 충분히 싫다 할 수도 있고, 부담스럽다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함께 움직이기를 마다치 않아주어 고맙다고. 아니, 고마운 게 아니라 그래서 달래가 좋다고. 어느 자리에서도 특별히 무슨 의식이 있다는 걸 드러내려거나 내세우듯 하는 거 전혀 없으면서도 그런 일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함께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나는 좋다고. 

 

 그랬더니 달래가 그러네. 칭찬에 머쓱해서 그러는지, 암튼 요사이 유머가 늘었다니까.

 

 "강정의 평화를 위해 가는 거라기 보다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는 거야. 

  오빠가 가고 싶어하는 거 같으니까, 가는 거지 ㅎㅎ"

 

 그런데 실은 나도 그렇거든.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는 강정의 평화니 한반도의 평화니 그런 게 아냐. 신부님 얼굴이 떠올라 가만히 있질 못하겠는 거고, 오두희 샘 그 쓸쓸한 얼굴이 떠올라서 너무 오래 가보지 않으면 가고 싶어지는. 승민이, 선경이, 거기에서 견디고 살아내는 지킴이들이, 그곳의 할망들, 아이들이. 

 

 

 

 

 

 

 

 

7. 밀양 할매들과 함께, 강정 할아버지 신부님을 만나러

 

 

 

 휴가의 마지막, 아흐레가 되던 일요일엔 다른 약속을 두고 있질 않았어. 꿀같은 휴가라는 게 이렇게 끝나는구나, 아쉬워하면서 이날 하루는 감자에게 바닷가 물놀이, 모래놀이를 실컷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뜨거운 폭염 속, 한낮에는 말고, 볕이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에 나가는 걸로.

 

 감자도 낮잠에 들고 품자도 낮잠에 든 시간, 잠든 아가들 곁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전화기 벨소리가 울려. 엊저녁 문화제가 열리던 탑동광장에서 만난 이계삼 선생의 목소리. 지금 할매들이 제주 오일장을 구경하고나서 점심을 드시고 있는데, 이 더위에 다들 너무 지쳐 힘들어하신다며 어디 시원한데에서 잠깐 쉬게 해드리고 싶다고, 혹시 예전에 감자네가 하던 난장이공 카페에 예약이 되겠는지를. 난장이공 카페에 다락방이 있으니 누워서 쉬셔야 할 분들에게도 거기가 좋을 것 같다면서.

 

 그리하여 감자품자네 식구도 난장이공에 연락을 해두고 할매들을 맞으러 그리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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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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