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마을

냉이로그 2010. 11. 29. 11:11

  
 성감독에게 연락하여다음 주에 함께 가자고 했다.

 언제 시간이 되겠니, 부탁이 하나 있어. 나 어렸을 때 살던 덴데…… 서울이야, 동작동 정금마을. 이제 곧 거기가 없어질 것 같은데, 같이 다니면서 거기 좀 찍어주라…… 그걸로 뭘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나 혼자서라도 간직하고 싶어서. 나 어렸을 때 살던 집, 뛰놀던 골목, 저 아래 큰 길까지 살던 동네…… 그냥 십 분, 십오분 짜리라도 간직해두고 싶어…… 그렇게라도 않으면 영영 못 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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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마을

 마지막으로 가본 건 지난 해 겨울이었다. 아니, 지난 해가 아니라 지지난 해였던가?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마을. 그골목길 파란대문 집 지하실 방에서 그 아랫집 문간방으로 셋방살이를 옮겨다니며 살았고,그 건너 연립주택에서 까까머리가 될 때까지 살았다. 그 골목 위엔 밭이 있었어, 그리고 우물이 있어 물을 길어오기도 했고, 그러던 자리에 흙을 메우고 축대를 쌓더니 학교 둘을 나란히 지어.그 하나가 동작초등, 그 옆이 동작중. 나는 그 초등의 첫 졸업생이 되었고, 그 중학교의 두번째 졸업생. (아, 그 학교에서 효리도 다녔다는 얘기는 내가 너무 자랑을 많이 했을까ㅎㅎ 효리네 오빠랑 나랑 같은 반이었다는 말도.)

 그 때만 해도 거기는 고개너머 마을인 배나무골이나 사당동 산 번지로 시작하는 곳보다는 조금 나아 한참 사당지구 철거가 있곤 할 때도 그건 저 쪽 산동네 얘기인 줄로만 알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찾은 그 옛마을은 이미 재개발의 열풍이, 내가 기억을 갖기 시작할 무렵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십 년 가까이, 어린 시절을 모두 품어주었던 그곳은 이미 반 이상이 깨지고 망가져. 우리 식구가 살던 그 골목의 문간방과 지하실방 역시 창문이 다 깨지고, 버리고 간 세간만이 황량하게 어질러진 채 언제 있을지 모를 포크레인 삽날이나 함마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블로거가 올려놓은 마을 어귀의 사진들. 저 길로 해서 언덕배기로 올라가야 그 골목길들이 나오는데, 어머나! 새길속셈학원, 저거는 아직 고대로 있었네. 우리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학원이라는 게 생긴 거였는데. 옴마야, 이발소도 그대로잖아! 잘 안 보여서 몰랐는데, 세상에나. 새길학원이 문 연 건 팔십육 년으로 기억이 나는데, 저 이발소는 내 기억력이 닿지도 않는 때부터 있던 거. 그 위에 영웅문방구는 없어졌구나, 추석 때마다 폭음탄, 화약을 사러 달려내려오곤 하던.

 

필름

 요사이 들어 방송 프로그램들을다운받아 보는 일들이 많았다. 주로 목조건축 혹은 전통건축, 그리고 더 나아가 생태건축 따위의 것들이었을 텐데, 어차피 인간의 삶을 다루는 분야들이란 어느 정도 들어가다보면 서로 경계를 지우기 마련,공학과 인문학이 만나고, 역사와 자연이 만나고, 어제와 오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보니 목록을 찾아 살피다 보면 볼만한 것들이참 많기도 하더라. 티비 방송에도 볼 만한 것들이 참 많구나, 잘 만든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놀라며. 그러다 곁다리로 보게 된것 중에는 다큐삼일이라는 씨리즈가 있기도 한데, 그것들을 보다 보면거기에는 작은 삶과 작은 꿈, 그리고 작지만 소중한기억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그러다보니 자연히 쫓겨가는 사람들, 밀려나는 삶들이 어쩌질 못하고 그 가운데에 놓여지곤 해.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란에게 부탁해보면 될지도. 그 때,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을 때 왜 사진이라도 하나 제대로 찍어두질 않았는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나의 젊은어미와 아비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게 하는, 내 오줌싸개 코흘리개 시절의 그 골목과 집들. 정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마을은 작년만 해도 벌써 재개발 싸움의 막바지로 들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올 봄에도 엠비씨던가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더라는 제목을 본 것도 같고, 홍대 앞 두리반 칼국수를 지키는 이들 소식 속에도 그 절박함을 함께 나누고 있더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그 마을의 싸움 또한 여느 철거 현장의 싸움들 못지 않게 살벌하게 진행 중. 주민들은 날마다 규찰을 서고, 공권력 아닌 폭력배들과의 충돌로 이미 많은 이들이 다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내내 모른 척. 왜 그 때처럼 달려가지를 않는 거니, 고향이나 다름없는, 네 어린시절의 전부이던 곳이 다 사라질 판인데. 그 시절 서초동 꽃마을, 봉천 5, 9동을 지키던 것처럼, 평택이며 용산이며 그곳들로 쫓아가던 것처럼…….그러나 나는 내내 모른 척이었고, 이제야 고작 생각한 거라곤 끝내 다 사라지기 전에 필름에 담아놓기라도 하고 싶다는 거.

 그래, 맞아. 문제아에 나오는 아이들 여럿이 뛰어놀던 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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