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 품자

품자로그 2017. 8. 28. 13:47

 

 

 품자가 첫 걸음을 뗀 건 영월 집엘 갔을 때였다. 그러니까 생후 열일곱달이 되던 날. 감자랑 품자는 열일곱 달 차이가 나니까, 감자가 지금 품자 정도 되었을 때 품자가 태어났더랬다. 그런데 그때 감자는 걷는 건 물론 뛰어다니기까지 했어. 감자도 걸음마 시작하는 게 늦다고들 했는데, 걸음마를 시작하는 거나 그런 걸로만 보면 품자는 감자보다 훨씬 늦어. 

 밥을 먹는 것도 지난 주부터야 처음으로 시작했다. 우리가 울진 처가에 다녀오던 날, 엄마가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꼭 두 주일을 제주에서 머물다 오늘 올라갔는데, 품자는 며칠 전부터야 할머니가 떠주는 밥을 입으로 넘기며 밥먹기를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주식은 엄마 젖을 무는 거긴 하지만, 열일곱달이 꽉 차도록 품자는 엄마젖말고는 그 무엇도 넘기지를 못하고, 입에 담고 우무러리다간 뱉어버리곤 했으니.

 감자와 품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보는 이마다 둘이는 참 다르다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형질이 같은 유전자가 대부분일 테니, 어떤 모습, 어떤 얼굴, 어떤 표정에선 둘이 똑같다,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닮은 거 말고는 참 다르다, 하고 말하는 게 대부분이야.

 체구로만 보면 감자는 또래 아가들보다 한참이나 작고, 품자는 한참이나 크다. 그래서 더러 아가들 선물로 옷을 보내주거나 할 때면, 감자 주라는 건 크기가 일쑤였고, 품자 앞으로 온 건 작아서 못입히는 일들이 많아.

 그러나 그런 외모면에서 보이는 거 말고, 품자는 감자 형아 때 못 보던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이를 테면, 품자는 언젠가부터 혼자서 너트식으로 된 장난감이나 뚜껑 같은 거를 지 손으로 혼자 열고닫고를 해. 연필을 쥐는 것도 감자는 아직 막대기를 잡듯 하지만, 품자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제법 제대로 한다. 장난감들 중에 풀고 조이고 끼우고 맞추고 하는 것들이 있거나, 장난감 아닌 생활용품 중에 단추나 지퍼, 뚜껑이며 마개, 속으로 끼워넣거나 걸쳐넣는 것 따윅 있으면, 그걸 유심히 보고 있다가 제 혼자 낑낑대며 그걸 따라해. 

 물론 이제 갓 돌이 지나거나 세 돌이 되지 않은 아가들을 놓고, 어떻다 저떻다 한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더러 우스갯 소리를 하곤 한다. 품자는 기술자가 될 거니? 아무래도 엔지니어가 되려나 보다 ㅎㅎㅎ 하면서. 아무 물건이든 앞에 놓이면 저 혼자서 한참이고 궁리를 해가며 그걸 해보려 하는 모습이 참 신기해보인다면서. 아마 그런 모습들은, 감자에게 보지 못했던 거라 더 그런지도 모르고.

 관찰하는, 가만히 지켜보는, 조심스러운. 감자를 곁에서 보아온 이들은 그런 식으로 감자를 표현하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감자의 눈빛을 보면서 아기의 눈빛인가 싶을 정도로, 마음 속을 들여다볼 것만 같은 눈빛을 보이곤 해. 그래서 달래도 가끔은 감자가 한참을 그 눈빛으로 바라보면 갑자기 무섭기도 하다, 는 말을 하곤 하는데, 나 또한 그래본 적이 더러 있어. 감자는 그렇게 무언가를 보는 아이, 가만히 바라보는, 깊이 들여다보는, 조심성이 많아 그런지, 주변을 관찰하고 사람들을 살피는, 그런 아이라면, 

 그런데 품자는, 감자 형아의 그것과는 또다르게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곤 했다. 형아가 모양 블럭을 맞춰갈 때는 어떻게 하는지, 엄마가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떻게 하는지, 미끄럼틀 대를 조립할 땐 너트를 어떻게 돌려맞추는지, 아빠가 나무막대로 구멍들을 어떻게 꿰는지를,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랄까, 손놀림이며 손에 든 그 물건을 어떻게 쥐어 움직이는지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저 혼자서 그것들을 따라하느라 낑낑대고 있어. 그 모습이 신기하다 싶어 인기척을 내지 않고 있다보면, 생각보다 꽤나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 엄마아, 를 부르거나 아빠아, 를 찾으면서 그게 잘 안 된다고 울며 보채거나 하지를 않는 채, 저 혼자서 잘 되지 않는 그거를 낑낑대면서. 

 그러니 감자와 품자는, 두 아기가 다 무언가를 참 자세히 본다 싶지만, 감자가 들여다보는 그것과 품자가 가만히 살펴보는 그건 참 많이도 달라 보여. 그런 걸까. 다들 같은 곳에 가더라도, 똑같이 산에 올라도, 똑같이 낯선 사람들의 공간에 가도, 저마다 보는 게 다르듯이, 아가들도 그런 걸까. 감자가 보는 그것, 품자가 보는 그것. 

 또 한 가지, 감자에게 보지 못하던 거라, 품자를 보며 놀라는 건, 어쩜 그럴까 싶은 품자의 애교. 여느 어린 목숨이 사랑스럽고 예쁘지 않겠냐만은, 요즈음 품자 하는 짓을 보면 어머어머 하며 놀랄 때가 많다. 그러면서 달래와 둘이, 감자 때는 이런 애교 같은 건 없었는데, 하면서 그걸 더 신기해 해. 물론 감자 또한 말할 수 없이 예쁘고 귀여웠지만, 품자가 보이는 그런 애교스런 몸짓이나 표정이 있어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존재 자체로, 먹을 거에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귀여웠고,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예뻤고, 무언가에 골똘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린 것의 손짓, 몸짓, 얼굴짓 하나하나가 신비로운 그것이었으니. 그러나 품자에게선, 아마 이런 건 타고나는가 보다, 싶은 천성의 애교가 몸에 배어 있어. 손가락질 하나를 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작은 몸짓 하나하나, 그냥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관절을 쓰는 게 다르달까 ㅎ 뿐 아니라 아빠아, 를 부르는 목소리며 말투까지, 어쩜 그렇게 애교스레 말을 하는지.

 태어나고부터 울룩불룩 살이 오르고 체구가 커서, 누구라도 품자를 보면, 우슬이는 아기장수 우뚜리라며, 팔다리에 모닝빵 대여섯개를 달고 있는, 그 모습으로 품자의 캐릭터를 기억하곤 했다. 그러다 요즈음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그때 그 팔다리의 울룩불룩 모닝빵을 기억하며, 왜 이리 살이 빠졌냐며, 빵빵 터질 것만 같던 그때를 아쉬워하곤 해. (살이 빠졌다는 것도, 그때에 견줘 그렇다는 거지, 품자를 안아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끄응차, 우와아 무겁다, 한다 ㅎ) 암튼 여전히 품자는 같은 날이거나 사나흘 앞뒤로 태어난 아가들과 나란히 있으면 반 년은 먼저 태어난 것처럼 크고 빵빵한 아기인데, 그 몸의 몸짓들은 어쩜 그리도 애교를 아는 딸 아이들의 그것처럼 그러는지. (게다가 몸집만 컸지, 같은 날 태어난 이웃 친구는 사월에 만났을 때부터 이미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 뛰어다니건만, 품자는 이제야 한 발 한 발 걸음마 ㅋ) 몸집 크기는 반년을 앞서, 걸음마 같은 거는 반년을 뒤져, 그렇게 크기만 하고 둔한 몸에, 어쩌면 그리도 애교가 잔뜩 배어 있는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보고 배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마 그런 애교스러움은 날 때부터 타고나,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는 건가 싶은.

 고백하자면 나는, 아니 고백이랄 것도 없이 이미 어디서건 떠벌여왔으니, 감자가 와주었을 때나 품자가 와주었을 때, 딸이기를 지극히도 바랐더랬다. 그래서 아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실망감을 갖기도 했지만, 감자와 품자에게 푹 빠져 지내는 뒤로는, 전혀 그런것이 아쉽거나 하지를 않았어. 더구나 요즈음 품자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애교스런 짓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딸을 보고 있는 것 같기라도 하면서, 그런 아쉬움 따위란 기억도 나지 않는.

   

 

 혼자 놀고 있다가도 품자야, 하고 눈을 맞춰주면

 

 

 이러고 본다니까 ㅎ

 

 

 엄마 등에 업혀 좋아하다가는,

 

 

 이렇게 얼굴을 꼭 파묻어.

 

 

 빨래를 개고 있으면 옆에 다가와,

 

 

 이런 애교짓을.

 

 

 생식 가루를 타고 있는 엄마 뒤로 와서는,

 

 

 지가 먼저 까꿍을 하고는 뒤로 숨고는,

 

 

 다시 까꿍을.

 

 

 모기약 한 가지만 손에 쥐고도,

 

 

 모가 그리 좋다고 ㅎ

 

 

 누가 곁에서 저 혼자 노는 걸 보아주기라도 하면은.

 

 

아빠가 벗어놓은 옷 한 장만 손에 쥐어도,

 

 

 어느 새 까꿍 놀이를 하자며, 지가 먼저 뒤집어 쓴단 말이지.

 

 

 그래놓곤 까꿍!

 

 

 한 쪽 코엔 콧물이 찍,

 

 

 그래도 모가 그리 좋다고 ㅎ

 

 

 미끄럼틀 뒤로 숨었다 나왔다 하면서,

 

 

 까꿍! 을 했다가 숨었다가,

 

 

 다시 나와서는 또 까꿍! 을 하고는 다시 숨어.

 

 

 그렇게 까꿍, 까꿍을.

 

 

 그러더니 이젠 미끄럼틀 위로 올라,

 

 

 모가 그리 좋다고 ^ ^

 

 

 그러다간 난데없이 하트를 그리며 사랑해요! 를.

 

 

 

 품자에겐 한없이 고맙다. 특히나 이 여름을 지나면서, 아가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비롯해 시작해온, 두 달 가까이 이어져오던 달래와의 갈등. 밤이면 풀리지 못하는 얘기들이 이어지다 서로의 한숨이나 막막함으로 끊기곤 했다. 소리치고 화를 터뜨리는 그런 부부싸움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숨이 막히던 날들의 연속. 대화는 소통으로 가질 못한 채, 서로가 서로를 벽으로 느끼게 되며, 소통하지 못하는 고립감에, 각자의 외로움에 갇혀들게 되는. 주된 골자는 감자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하는 품자를 대하는 모습까지. 그런 속에서 달래 뿐 아니라 아껴주는 이들로부터 그런 걱정을 들어야 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던, 그러나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온전히 받아들였을까, 그러는 척을 한 거였을까. 변명은 속으로 감춘 채, 어쩌면 그렇게라도. 엊그제 밤이었나, 두 달을 넘게 이어온, 달래와의 그 대화에 빗장이 열리며 녹아내리던 게.

 그래서 품자에겐 한없이 고맙다. 그만큼이나 미안해서 더 고마워. 아빤 그런 줄 몰랐는데, 아빠가 그랬니. 감자 형아만을, 감자 형아 마음만을, 그래서 품자는 아빠한테 많이도 서럽고 섭섭했니. 흔한 육아 책에 나오는 것처럼 둘째의 애교본능은, 생존본능이라더니, 아빤 그런 말 믿고 싶지 않지만, 어쩜 품자도 그래서인 거니. 아빤, 감자 형아가 질투할 만큼 품자를 더 안아준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고마워, 품자야. 그랬음에도 아빠만 보면 그 환한 웃음으로, 아빠아 아빠아를 부르며 무릎걸음으로 쫓아나오고, 아빠를 향해 두 팔을 뻗어 안아달라 달려들어주어서. 아빠가 출근할 때마다 가지 말라 울음을 터뜨리고, 아빠가 집에 오면 달려들어 매달리는, 품자가 있어 아빠는 하루를 견딜 수 있다는 걸.

 

 

 

 

 

 

 

 

 

'품자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이터 품자  (0) 2017.08.24
벌거숭이들  (0) 2017.07.17
0310 그날  (2) 2017.03.26
품자, 지구별 한 바퀴  (2) 2017.03.09
촛불 1217  (0) 2016.12.20
Posted by 냉이로그
,